모래를 쥐는 방법

매일 쓰기 57일차

by Inclass

교직을 처음 시작했던 시기에 부모님은 다시 공장을 시작하셨어요.


저의 학창 시절 기간 동안 계속 공장을 하셨고, 제가 대학을 다니던 시점에 공장을 정리하셨지요.


여유를 즐기는 방법을 모르다 보니, 일 하지 않는 시기를 보내는 게 힘드셨나 봐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제가 학교에서 급여를 받는 생활이 시작되던 시기에 부모님도 공장을 다시 시작하셨지요.


차이가 있다면, 이전에는 규모가 조금 있으지만, 다시 시작한 공장은 두 분 이서만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공장이었어요.


교직을 했던 제게는 그렇게 좋지 않았지요.


학교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면, 부모님께서 하기 힘든 공장 일을 도와야 했어요. 주말에도 역시나 그렇게 시간을 보내야 했지요. 물론, 그렇다고 수익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그런 건 아니고 단순히 부모를 섬긴다는 생각에서 그랬었어요.


의도가 좋아도 몸이 힘들면 마음도 힘들어지게 되는 거예요.


그런 일상이 단기적인 게 아니라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있으니 저 나름 지치기 시작했지요.


문제는, 제 일에 대한 부모님의 이해가 없었다는 거예요. 지금도 그렇지만 제 부모님은 자식과 가정을 매우 생각하지만, 자신의 힘겨움과 어려움이 우선이며 본인의 힘겨움과 어려움을 티 내지 않는다고 하지만 노골적으로 가족, 특히 자녀에게 표현하는 성향이거든요.


결코, 외면하기 힘들었고, 피하지 못하는 문제와 갈등이었지요.


초임 시기다 보니, 7시 전에 일어나서 8시까지 학교에 갔어요. 하루의 수업을 하고 저녁 8시, 9시에 집에 오면 무거운 박스를 나르는 일이 집에 있었지요. 괜찮다고 네 할 일을 하라고 하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분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결국, 몸이 조금 힘들고 마음이라도 편하자는 생각으로 제 시간을 양보하게 되지요.

그런 상황에서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정서적으로 많이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런 마음이 언제부터인가 삶에 대한 애착도 없어지게 만들더라고요. 바뀌지 않을 환경. 이해받지 못하는 노력. 이런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아직도 기억나요.

그날도 학교에서 연구수업 준비를 하다가, 늦은 시간 퇴근을 하며,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누적된 피로와,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하루의 무게 때문에 지금의 내가 너무 처량하게 느껴졌어요.


그냥 눈 딱 감고 핸들만 꺾으면 그냥 끝날수도 있을 건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어요.

그냥, 여기서 모두 접을까?


그런데 순간 그런 이미지가 떠오른 거예요.


손으로 모래를 담는 모습 말이에요.

이미지와 함께 그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많은 모래를 손에 담기 위해서는 주먹을 쥐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을 펴야 한다는 것 말이에요.


어쩌면, 내가 지금 너무 힘든 것은, “나의 일”을 위한 “나의 시간”을 너무 소유하려는 욕심 때문에 “내 것”에 대한 조바심이 마음의 무거움을 주는 원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는 조금은 풀어 주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내 시간에 대한 소유권의 주장을 조금은 풀어주자, 나의 소유에 대한 조바심을 조금은 풀어주자고 말이지요.

그러자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환경은 변하지 않았는데,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어요. 부족함에 대한 의미가 있음을 알았고, 실패에서도 배움이 있음을 알았으며, 내 삶이 아닌 부분에서도 깨달음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 일에서도 여유가 생기고 관계에서도 여유가 생겼어요. 물리적으로 바뀐 건 없었는데 말이지요.




아이가 소풍을 갔어요.

도시락 준비를 위해서 가족 모두가 평소보다 30분 이른 아침을 준비했지요.


고작 30분 일찍은 아침인데 어찌 그리 눈을 뜨는 게 힘들던지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10년간 교직을 하면서 나는 어떻게 매일 아침 6시에 눈을 떠서 출근을 했었을까? 하고 말이지요.


교직에 있으면서 사실 가족은 제 삶에 없었어요.

매일 6시에 일어나고, 7시면 집에서 나가서 이르면 저녁 9시, 늦으면 11시가 조금 지나서 집에 왔었지요.

당연히, 아이의 자는 모습을 보고 출근을 하고, 자는 모습을 보고 퇴근을 했어요.


주말의 시간이 있지만, 평일에 하기 힘든 수업 준비를 주말에 했어야 했지요.


물론, 연차가 쌓이면 수업 준비의 필요가 없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해마다 아이들의 수준은 다르고, 저마다의 이해 방법도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것을 외면할 수는 없었어요. 적어도, 저와 관계한 아이들에 대하여 책임감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책임감이 주말에도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다가왔지요.


퇴직을 하고, 가족과 함께 제조업을 하면서 좋은 점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것이고, 나쁜 점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이에요.


가족과 공장 일을 하면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가족이기에 참아야 하고, 집에 돌아와서 가족과 있으면서 그런 불만을 표출할 수는 없지요.


부모님과 함께 일을 하다 보니 사생활의 영역에서 모호함이 생기는 것도 당연해요. 부모, 자식의 관계다 보니 숨기기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하나하나 오픈하기도 이상한 상황이 가끔 생기지요. 퇴근 후에는 부모로서 책임도 해야 해요. 아이와 놀아주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도 해야 하지요.


부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부모가 더욱 연로하기 전에 섬길 수 있고,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제 시간이 너무 없다는 거예요.


출근해서 부모와 함께 일을 하고, 퇴근하고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요. 어쩌면 평화로운 그런 시간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나”의 시간은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무거워졌어요.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그렇더라고요.

내 시간의 소유권에 대해서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니 예민해지고, 스스로를 측은하게 느끼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이번에도 마음에 여유를 두기로 했어요.

지난번과의 차이라고 한다면, 제가 호흡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에 대해서 인지하고 그것에 최소한의 시간을 배려하도록 한다는 것. 그리고, 단조롭게 느껴지는 삶 속에서 긍정적 작은 변화에 민감하고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이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아이의 소풍, 아이의 발치, 아이가 처음으로 놀이터에서 혼자 놀았던 날, 아이의 친구가 우리 집에 왔던 날과 같은 소소한 일상이 기쁨이 되고 그것이 제 호흡을 조금은 여유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시각의 차이가 제게 어떤 물리적 변화를 부르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시각의 변화가 제가 호흡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준다는 느낌을 주지요.

그런 호흡의 틈이 생각의 틈을 만들고, 문제에서 자유롭게 하는 거리를 만들어 준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지금 제조업을 하고 있어요.

이제 약 2년의 시간을 보냈군요.


학교에 있으면서 나름 유능한 인재로 인정받았는데, 부모님과 제조업을 하면서 너무도 정적이고, 변화 없이 단조로운, 그렇다고 매우 효율적인 경제 활동도 아닌 일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어요.


사실 매우 답답하기도 하지요. 제겐 아직도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데, 그것을 적용할 수 없고, 오픈할 수 없다는 것에서 말이에요.


그것 때문에 마음이 많이 무겁기도 했어요.

실제 지인들을 만나서 지금 제가 하는 일의 방식을 듣고, 인력 낭비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으니까요.


마음이 무거우니 하루하루가 즐겁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도 깨닫게 되었어요.

조급함이 문제였다는 것을 말이지요.


조급함 때문에 거리가 가까워지고, 시각이 좁아지고, 호흡이 힘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누군가는 그래도 “때”라는 것이 있는데, 지금 그렇게 여유 부려도 되냐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요. 저도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역시나 마음에 먹구름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아마, 생각의 흐름은 칼로 두부 자르듯이 절단면을 확실하게 만들 수 없으니 더욱 그럴 수 있겠지요.


동시에 그런 질문이 떠오르더군요.

과연, 어떤 때에 우리는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요?

과연 그런 시기가 왔을 때, 지금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때”라는 것을 우리는 인지할 수 있을까요?


힘을 빼는 연습을 하지 못하면, 저는 언제까지나 조급하게 살아갈 것 같아요.


열심히 공장을 운영하고, 쉼을 즐긴다고 사업을 정리했다가, 쉼을 즐기는 방법을 몰라서 다시 공장을 시작한 우리 부모님처럼 말이지요.


간단한 스포츠를 하고, 동호회에 참석하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여행을 하는 게 과연 쉼을 즐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모르지요. 사람마다 관점의 차이는 있으니 말이에요.


하나 확실한 것은 지금부터 힘을 빼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손에 모래를 많이 담기 위해서 힘을 빼는 지혜를 지금부터 쌓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야 나이에 관계없이 우리의 삶이 풍성하게 된다는 생각을 해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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