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58일차
언제부터인가 무표정한 표정의 친절한 목소리를 자주 인식하게 되었어요.
카페나 제과점, 식당 등에서 종업원과 마주하여 주문을 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과정에서 친절한 목소리와는 달리 무표정한 얼굴을 보면서 어색함을 느끼기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제가 꼰대가 되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카페에 앉아서 다른 사람의 주문을 받는 점원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매번 같은 말을 하고 비슷한 작업을 해야 하는 직원의 입장도 생각하게 되었지요.
사실, 어떻게 보면 틀 안에서 반복하는 일이니까요.
그 사람의 입장에서 매번 주문받고, 비용을 계산하고, 주문한 음료나 물건을 전달하는 단조로움 속에서 손님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수령하는 급여가 동일하다면, 많은 손님이 그렇게 반가운 부분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퇴사를 한 지인이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친척이 창업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요.
창업을 한 사촌의 경우 적정 학력 이상의 직원이 필요했고, 지인의 경우 그 조건을 만족하기 때문에 함께 일 하기를 권했다고 하더군요.
친인척이 권하는 일이니 모르는 사람과 하는 것보다는 좋겠다는 생각에 일을 시작했어요. 이사를 해야 했고, 살아가는 환경이 완전하게 바뀌어야 했지요.
한 달 만에 지인은 일을 그만두고 나왔다고 해요.
일단, 성인 한 명이 한 달을 생활하기에 부족한 금액을 급여로 측정했고, 점심 식사는 편의점 도시락이 전부였으며, 부족한 생활비 충족을 위해서 퇴근 이후 다른 일을 하려 해도 회사 규정상 금지한다는 조건을 이야기하더라는 거예요.
정규 직원이라면, 적어도 먹고 살아가는 정도의 수익은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긍정적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그래도 참으면서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는데, 결국 뿌리치고 나왔다고 하더군요.
선생님들 사이게 그런 말이 있어요.
교실이 힘들면 교무실이 쉽고, 교무실이 힘들면 교실이 쉽다는 말이요.
풀어서 말하면, 교실에서 사건 사고가 많으면 교무실 분위기가 좋게 느껴지고, 교무실에서 업무가 많고 소통이 어려우면 그 해에는 학급에서 사고 발생도 낮고 아이들과 호흡도 좋다는 의미이지요.
어떻게 보면 문제와 사고는 상대적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교실이 힘들면, 교무실이 쉽고, 교무실이 힘들면 교실이 쉽다는 상대적 느낌 말이지요.
풀어서 이야기하면, 어디서든 힘들다는 것은 상대적인 느낌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행복하고 즐겁고 좋다고 단정하기는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지금의 상황이 좋다는 것은 조금 좋지 않음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긍정적 감정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런 긍정적 감정이 조금이라도 작아지면 보이지 않던 부정적 요소가 보이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지요.
때문에 어디서든, 우리는 항상 좋음과 나쁨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문제는 좋음과 나쁨이 모두가 생각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 또한 상대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지만요.
아르바이트로 일 하는 직장에 손님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직원이 받는 급여는 동일하지요. 급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직원에게는 손님이 많은 매장이 좋은 환경은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아르바이트 자리의 안정성, 그리고 일을 통해서 자신의 경험치를 높여서 자신의 일을 하고 싶다는 직원이라면 급여와 관계없이 경험치를 충족한다는 관점에서는 손님이 많은 매장이 더 좋다고 볼 수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돈을 받으면서 경험치를 배우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친인척과 일을 시작한 지인의 경우도 너무도 작은 급여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해 보이는 긍정적 관점은 분명 부정적 환경으로 인식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초기 창업 과정에서 자금이 여유로운 직장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그리고 지금보다 미래에 대한 가치로 봤을 때 자신이 담당하는 업무가 독보적인 영역이라면 불확실한 미래지만,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직장에서 자신의 자리에 대한 절대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볼 수도 있지요.
과연 우리 삶의 유한함 속에서 절대성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잘 되는 직장이 항상 잘 된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처럼, 부족한 직장이 항상 그 자리에 머물고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해요.
언제든 변화의 가능성이 있으며, 그런 변화가 시작되는 흔들림에서 발생하는 틈에 준비된 사람이 자리 잡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문제는 그런 틈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움직임이 있어야 하고 그런 움직임은 때로는 위기처럼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하는데, 고르게 굳는 땅이 있고, 지저분한 발자국이 남아서 움푹 움푹 파인 형태로 굳는 땅이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예술계 고등학교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요.
무용부 아이들의 공연을 봤었는데, 무대에서 아름다운 표정으로 연기를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사람들은 그들의 표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저는 그 아이들의 표정과 준비 과정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한창 성장하는 나이에 공연을 위해서 체중을 조절하고, 멋진 무대를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시간 몸을 쓰면서 연습을 하고, 그런 노력이 바탕되어서 긴장감 가득한 무대에서 여유롭고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연기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는 감정이 가슴 깊이에서 올라와서 눈물을 흘리는 경험을 했었어요.
우리는 행복한 삶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어요.
미래의 언젠가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을 기대하고 오늘을 이겨내고 있지요.
그런데 그런 기대감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행복을 위해 우리는 막연하게 “행복만 채워지는 삶”을 살아야 할까요?
어쩌면 행복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힘든 하루, 고통스러운 지금의 순간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을 내가 갖춘 시기에 자연스럽게 내 삶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