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형태를 갖다.

매일 쓰기 73일차

by Inclass

군시절, 밤에 잠을 자려하면 머릿속에 무수하게 많은 생각이 떠돌아다녔어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어요.

취침점호를 마치고, 내무실에 소등을 하고, 첫 불침번이 근무를 나가는 분주함 속에서 나머지 소대원은 얇은 매트리스와 낡아서 먼지가 가득한 모포를 덮고 잠을 청하게 되지요.

그 모포 속에서 불침번 근무 전까지 어떻게든 빨리 잠을 청하려는 시도 가운데, 저도 모르는 소리가 머리에서 들리기 시작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소리인지는 모르겠어요.

전부터 워낙에 많은 생각이 있었기에, 그런 다양한 고민의 연속이었던 것도 같았어요. 미래에 대한 고민,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에 대한 고민, 때로는 엉뚱한 상상,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지만, 당시에는 무엇인가 대단한 것 같은 가치 있는 고민들 말이지요.


처음에는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서 혼자 하는 독백처럼 떠들던 말이 어느 순간 여러 사람이 서로 떠드는 이야기가 되었는데, 그러다 보면 금방 잠들곤 했어요.


가볍게 여기던 그 일이 어느 순간부터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의도하지 않은 목소리들이 나온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걱정이 되었지요.


무엇인가, 머리에 어떤 생각이 가득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전방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고,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면서 대기 시간에는 무엇을 쓸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했었지요.


떠오르는 생각을 연습장에 적었어요. 혼자 하는 말처럼, 때로는 누군가의 대화처럼. 그렇게 이야기를 적었어요.


신기한 것은 그런 생각을 기록하면서 저도 모르게 머리가 가볍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형태를 취하지 않았던 묶여있던 생각의 덩어리들이 문자로 표현되면서 풀어지는 느낌이었고, 제 머리에서 옮겨지는 기분이었지요.


지금도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그때와 같이 서로 다른 소리가 제 머리에서 떠들고 그런 건 아니지만, 조금은 깊이를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 마음에 생각을 글로 풀어내고 있지요. 비록,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것일지 모르지만, 제 관점에서는 연습장에 기록하는 것이나, 온라인에 기록하는 것이나 큰 차이는 없으니 그렇게 손해 보는 일은 아니지요.


오히려 온라인에 기록하면서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거나, 생각을 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 않을까요?


김상욱 교수님께서 언젠가 방송에서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어요.

다른 이야기 보다, 글 쓰기를 통해서 우리는 더욱 고차원적인 사고가 가능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수능 수학에서 킬러 문제를 결코 사고함만으로 풀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아무리 문명이 발전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쓴다는 행위는 어떻게든 우리와 함께하지 않을까 라는 조심스러운 생각을 해 봤어요.


쓴다는 행위로 누군가의 생각이 형태를 취하게 되겠지요. 형태를 취한 생각은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누군가는 그 생각이라는 씨앗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더욱 풍성한 숲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오늘도 이렇게 추상적으로 떠돌던 생각의 한 조각에게 형태를 부여했군요. 오늘 제가 만든 씨앗은 누구의 숲으로 날아가서 자리 잡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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