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85일차
좋은 것을 가까이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누구나 그럴 거예요.
그 욕심 때문에 우리는 힘들어하지요.
나는 널 사랑하는데, 너는 왜 그렇지 않아?
내가 네게 주는 호감만큼 넌 날 생각하지 않니?
어린 시절에는 정말 많이 그랬던 것 같아요.
내가 주는 마음만큼 상대도 내게 줬으면 좋겠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그저 실망스럽고.
관계에서만 그런 게 아니에요.
삶에 대해서도 그렇지요.
더 좋은 삶을 살고 싶어.
더 좋은, 지금보다 더 좋은.
더 많은 자유를 얻고 싶어.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얻고 싶어.
더 많이. 더. 더.
부족함에 대한 갈증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욕망으로 변하고, 집착하게 되고, 무한한 갈망을 선물하게 되지요.
끝없이 느껴지는 목마름은 충돌을 불러와요.
사소한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수용할 수 있는 감정의 폭이 좁아지게 되지요.
힘이 들어가면 잘 다치게 되는 것 같아요.
몸에 힘이 들어가면, 작은 충돌도 크게 느껴지게 되지요.
지진에서 버틸 수 있는 내진설계라는 기술이 있어요.
지진에서 버티기 위해서 건물을 튼튼하게 건축하는 게 기술이 아니라, 충격을 자연스럽게 흘러 보내는 유연함이 기술이라는 것이지요.
힘을 빼면, 어느 정도의 충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요.
마치,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안착하는 고양이처럼 말이에요.
마치, 넘어져도 잘 다치지 않는 아이들처럼 말이지요.
친한 선생님들과 축구를 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우리보다 적어도 평균 10살은 젋어보이는 사람들과 경기를 하게 되었지요.
비교도 되지 않는 경기력이었어요.
그런데, 우리 팀의 리더 격 되는 선생님께서 이야기하더라고요. 말을 하라고. 서로 이야기를 하라고 말이에요. 소통하라고 말이지요.
말이 오고 가면서 실수에도 웃기 시작했고, 경기가 유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결론적으로 이기지는 못했지만 매우 근사하게 점수차를 좁힐 수 있게 되었지요.
학원에서 일하던 시절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망하는 조직은 회의가 많고, 잘 되는 조직은 회식이 많다.
그만큼 일방적인 정보의 전달이 경직된 모습을 만들고, 자유로운 소통의 문화가 유연한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 같아요. 아마, 최근 여러 스타트업에서 직위를 부르지 않고 닉네임을 부르는 문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삶에서도 힘을 빼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방법론으로 “소통”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집착하는 것에서, 내가 갈증을 느끼는 것에서 힘을 뺀다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겠지요. 문제는 내가 집착하는 것에서, 내가 갈증을 느끼는 것에서 시선을 옮기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에요.
마음의 모순이라는 게 잊으려 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이니까요.
잊기 위해서 잊으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잊기 위해서 다른 것을 넣은 방법이지요. 소통하는 방법이요. 문제와 소통하지 말고, 다른 것과 소통하는 방법이요.
그러다 보면 어느덧 나도 모르게 문제에서 멀어지게 되지요. 그 문제에서 조금은 힘이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
힘을 빼는 연습이 필요해요.
내가 집착하는 무엇에서 말이지요.
관계도 그런 것 같아요.
잡고 싶다면 오히려 내게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나로서 온전한 순간에, 내가 나로서 완전해지는 순간에 완전함과 완전함이 만나서 안정을 만들게 되니까요.
나의 갈증을 충족하기 위해서 관계를 잡는다면, 어쩌면 그 갈증에 부름 받은 사람도 여전히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불완전과 불완전이 만나서 더욱 불완전할 수 있거든요.
잡으려는 노력에 들어간 힘을 빼는 연습을 한다면, 오히려 더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