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87일차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왔어요.
연휴가 있었고, 아이의 재량휴업일이 있었어요.
보통 여행의 아침은 설렘으로 시작하지만, 가족끼리 제조업을 한다면 그렇지 않아요.
아침에 가족들이 모이고, 공장의 일을 빨리 정리하고, 우리가 집을 비워도 기계는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점검을 하고 여행을 다녀오게 되지요.
그동안 기계가 멈추는 건 어쩔 수 없고, 아주 적은 확률로 기계가 불량품을 만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요.
그렇게 여유롭지 않게 오전을 보내고,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고 목적지로 향하게 됩니다.
목적지에 가서도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니에요.
운전은 여유롭게, 안전하게, 살살 하라며 잔소리하시는 아버지는 목적지에 가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여행지를 살펴보지요. 여행지에서의 최소한의 목적을 최단시간에 수립하고 집에 갈 시간을 계획하세요. 출발 전에 이미 제가 계획을 하고 왔지만, 그런 계획은 언제든 수정 가능한 부분이며 성립하기 힘든 계획이며 아버지의 취향에 따라 즉흥적으로 변경되는 계획이지요.
마치, 해야 하는 과제를 행하는 학생처럼, 정해진 목적지에서 스탬프 용지를 채우는 학생처럼 최단시간 숨 가쁘게 이동하고, 저녁을 먹고는 급하게 집으로 돌아오지요. 그게 우리 가족이 하는 보통의 여행이에요.
비슷한 출발시간과 비슷한 도착시간을 선호하기 때문에 목적지의 거리가 멀다면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은 짧아지고, 목적지가 가깝다면 여행지에서 시간이 여유로워지는 구조이지요.
그게 무슨 여행이야?
사실 저도 그렇게 익숙하지 않았어요. 처음 가는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새로운 경험과 어느 정도의 여유, 쉼, 숨을 돌리는 틈을 얻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했지요.
시작은 두근거림과 설렘이 함께해야 하고, 가는 동안의 즐거움이 있어야 하고, 여행지에서의 여유와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렇지만,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은 결코 그렇지 않았어요.
여행을 위해서 더 바쁘게 움직여야 했고, 저는 언제든 바뀔 동선에 대비해서 다양한 정보를 습득해 둬야 했고, 이동 중에는 아이를 제외한 대부분이 피로를 느꼈으며, 여행지에서는 시간이 쫓기며 지내야 했지요.
익숙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불만만 쌓이는 여행이었지요. 여행을 통한 힐링보다는 어딘지 모를 스트레스와 답답함이 더 많아지는 기분.
여행을 다녀오면, 쉼이 아니라 여행으로 비운 시간을 채워야 하는 더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부모님의 일을 받는 저로서는 엄청난 스트레스였지요.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제조업을 계속한다면, 부모님의 일을 이어서 한다면 나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런 삶이 내 미래라고?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던 중 생각이 바뀌었어요.
어떤 계기인지는 모르겠어요. 무엇이 제 생각을 바꾸게 했는지도 모르겠고요.
배우지 못해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업을 하면서, 먹고 살아가는데 바쁘고, 삶을 이어가는데 정신이 없으며,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부분을 위해서 그저 노력하셨던 삶에서 여유를 즐기는 방법, 쉼을 얻는 방법, 여행을 즐기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공장을 가동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내서 여행지를 다녀온다는 행위가 그분들에게는 큰 변화이고 배려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단지, 쉼과 여행에 대한 이상적 가치를 가진 젊은 사람의 관점에서는 한없이 부족할 수 있겠지만요.
교사라는 제 이력의 영향으로 저는 배우는 삶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중 하나가 쉼을 배우는 방법, 여유를 배우는 방법, 혼자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해요.
젊은 시절부터 공장을 운영하고, 사업장을 키우고, 부유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신 부모님께서는 먹고 살아가는 행위를 가족들이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본인들의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셨어요.
당연히 여가시간을 누리는 방법을 모르시지요. 그러다 보니 삶은 아직도 바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살아가고 있고, 그나마 얻게 되는 쉼의 시간은 TV를 보는 것으로 채워지고 있지요.
운동을 배우기에는 몸이 힘들다는 느낌이고, 새로운 취미를 배우기에는 이제 나이가 늦었다는 생각을 하시지요. 그저, 어제 했던 일을 오늘도 이어가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어제도, 오늘도 공장을 가동하지요.
문제는 그것을 본인들의 힘으로 온전하게 하지 못하니 가족들이, 자녀가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일로 되지만 여전히 어리게 보이는 자녀에게 그 일을 주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갈등에 많이 답답하곤 했어요.
그런데, 이해하려고요.
부모님의 성향을 이해하고, 그것을 수용하며, 스스로에게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려고요.
소유가 조금 부족하다고 삶이 엄청나게 불행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삶이 조금 느리다고 제가 인생의 패자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계속 원망하고, 그것을 탓하기만 하면 뭐가 되겠어요? 차라리, 바뀌지 못하는 상황을 수용하고, 지금 내게 주어진 범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고민하며 언젠가 제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때 상상하던 것을 실행할 수 있도록, 시행착오를 경험하지 않도록 미래를 준비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부모님을 보면서, 제가 생각하는 건.
저는 먹고 살아가는 것에만 너무 집중하지 않으려고요.
저는 먹고, 살아가며, 삶을 즐기는 것에도 마음 쓰려고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의식적으로 책을 읽고, 의식적으로 글을 쓰면서, 삶에 대해서 고민하고, 일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살아가려고요.
외모는 시간을 이기지 못해도, 생각의 깊이는 시간을 이기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의 깊이가 행동으로 나오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제게 다가오는 부족한 것들, 저게 시험을 주는 것들을 보며 배우려 합니다. 그것을 원망하고 탓하기보다는, 그것을 통해서 저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배우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