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133일차
교육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교과교실제 강사를 처음으로 하게 되었어요.
교생실습을 제외하고 학교에서 정식으로 일을 하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지요.
학기가 시작되고, 학기 초의 바쁜 일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 저를 포함한 교과교실제 강사 6명, 인턴교사 2명 그리고 우리를 담당하는 부장 교사, 소위 그 부장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강사 A와 회식자리가 마련되었어요.
모두가 계약직이고, 모두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들로서 부장교사는 인사권을 가진 매우 권위 있는 사람으로 보였지요.
문제는, 회식자리가 이어지면서였어요.
1차로 시작된 담백한 식사자리는 2차로 음주로 이어지게 되었지요.
교과교실제 강사 선생님들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 여선생님들이었어요. 그 가운데 저만 유일하게 대학원을 졸업한 조금은 나이가 있는 남자였지요.
술자리를 하면서 부장교사와 강사 A는 낮과 밤의 경계처럼 모호하게 예의의 선을 넘어서기 시작했어요. 그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가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이었지요. 말이 술자리지 그들 둘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술보다는 콜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거든요.
10시가 넘어서 이제는 자리가 끝나는가 싶었는데, 이미 숙취가 오른 부장교사와 강사 A는 3차로 노래방을 가자고 하더군요. 모두가 엉거주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면서 엉겁결에 노래방에 따라갔는데, 문제가 발생했어요.
교과교실제 강사들만 모여 앉은 모습을 보고는 부장교사가 여선생님들을 자신의 옆자리로 오라고 했던 거예요. 싫었지요. 교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게. 그리고 이제 막 교직에 첫 발을 내딛는 젊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행동하는 게 말이지요.
저는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그리고 이야기했지요.
시간도 늦었으니 이제 가야 할 것 같다고 말이지요. 그러면서 그 자리를 거북하게 여기는 여선생님들도 가셔야 할 것 같다고 말이에요.
그 말에 부장은 눈빛이 변했어요. 그리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강사 A를 보더군요.
강사 A는 제게 잠시 밖에서 보자고 했어요.
스스럼없이 따라 나갔지요.
그리고 강사 A는 제게 이야기했어요.
저분이 어떤 분인지 아느냐고, 곧 교감으로 올라갈 분이라고. 그런데 이렇게 행동도 되겠냐고 말이지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냐고 말이에요.
저는 후회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오히려, 이 자리에 계속 있으면 더 후회할 것 같다고 말했지요. 그리곤 할 말 다 했으면 가겠다고 말하고는 일행이 있는 방에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나왔어요. 물론, 그 자리를 불편하게 여기던 선생님들도 같이 말이에요.
이후로 저는 교감이 될 부장교사에게 미움을 받으며 지냈을까요?
이후로 저는 그 일을 후회하게 되었을까요?
다행스럽게도 저는 업무에서 긍정적 평가를 많이 받았어요. 학생 지도에서도 말이지요. 학기 초에 저와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던 부장교사에게도 긍정적 평가를 받았지요. 술자리는 좋아하지 않아도 일에서는 인정받았어요.
1년을 마치고 그 학교를 나오면서 부장교사는 제게 그랬지요.
본인이 교감이 되면 저를 부르겠다고.
그리고 저는 말했지요. 언제든 불러주면 다시 오겠다고. 그때 또 즐겁게 일하고 싶다고 말이지요.
이후로 연락은 없었어요. 나중에 건너 건너 소식을 들으니, 보다 더 위에 아부를 잘하던 누군가에게 밀렸다고 하더군요.
강사 A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부장교사가 그에게 특별한 인사권을 발휘했을까요?
오랜 시간이 지나서 제게 전화가 왔어요. 제가 있는 학교에 해당 교과의 교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는데 지원한다면 자신에게 승산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말이에요. 안타깝게도 누군가의 인사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는 능력이 제겐 없어서 명확한 답변을 하기는 어려웠어요.
이제 교직을 시작하는 제자들을 만나면 저는 가끔 이 이야기를 하곤 해요.
절대,
누군가 네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고 그들에게 비굴해질 필요는 없으며, 네 기준과 가치를 바탕으로 이기적인 마음에서 그들의 요구를 판단하라고 말하지요.
중요한 건 일이 아니에요. 사람이지요. 개인의 마음이에요.
일을 얻었다고 해서 개인의 마음이 무너지면 그건 차라리 얻지 않는 게 더 좋은 것 아닐까요?
비록 지금은 내 인사권을 가진 그의 능력이 마치 세상의 전부처럼 보여도,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더 큰 세상이 있으니 너무 벼랑 끝에 선 마음으로 교직을 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그 부장님을 좋지 않게 기억하는 건 아니에요.
아직도 그 부장님을 생각하면 사진처럼 떠오르는 장면이 있거든요.
2학기 말.
교실에서 아이들과 수학 수업과 레크리에이션을 접목해서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부장님께서 복도를 지나가면서 뒷 문의 유리창으로 교실을 보다가 저와 눈이 마주쳤었어요.
그리곤, 생전 처음 보는 밝은 미소와 함께 엄지로 따봉을 보이셨거든요. 그 표정이 당시 제겐 사진처럼 남아있지요.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른이 있어야 한다."
제겐 그런 기억이었어요.
아이들과 즐기면서 하는 수업에서, 강의식이 아닌 놀이식으로 하던 수업에서.
이게 맞는가?라는 의문을 느끼던 그 시기에,
"따봉"을 보여주고 가셨던 어른.
그 덕분에 학기말에 아이들과 더욱 즐겁게, 자신 있게 수업을 했었어요.
비록 노래방에서의 조금 삐딱했던 기억도 있지만, 그래도 항상 고민하며 분주하고 아이들을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보여주던 어른이자 선배 선생님. 어디서든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