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크기와 세상의 크기는 비례한다.
양말은 모두 같다고 생각했다.
디자인에 대한 각각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실로 방직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니 기초는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양말 하면 보통 발가락이 모두 하나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일반 양말을 생각하는데 이 경우는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많은 사람에게 사용되다 보니 그나마 디자인이 다양화되었으나 무좀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검은색 발가락 양말의 경우는 디자인의 다양화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 저 선생님 발가락 양말 신었어. 무좀 같아. 뭐야, 발가락 징그러워.
학교에 있으면서 발가락 양말을 신은 선생님을 본 학생과 다른 선생님들의 반응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께서 발가락 양말 방직 공장을 하였으나, 소수의 사람들이 착용하는 양말이고 그런 소수를 대상으로 또 다른 소수의 기술자들이 생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양말을 착용했으나, 발가락 양말을 착용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양말공장을 했으나, 직장에서 착용할 일반 양말을 구입하곤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양말 방직을 시작하면서 발가락 양말을 착용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다양한 색상으로 갖춰진 디자인이 있었고, 기존에 알고 있던 발가락 양말,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봤던 발가락 양말과는 상당 부분 차이가 있었다.
부모님의 일을 도우면서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거래처의 주문이냐에 따라서 사용하는 속실이 다르고, 어떤 디자인이냐에 따라서 사용하는 겉실의 종류가 달랐다. 같은 색상이지만, 원사가 생성된 시점에 따라서 미묘한 컬러의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양말은 기본적으로 겉실과 속실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양말은 그러하다. 보통 겉실은 면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원사의 종류에 따라서 다양한 색을 표현하거나 질감의 차이가 발생한다. 속실은 스판이라는 이름으로 폴리나 나일론등의 소재가 활용된 실을 사용한다.
양말이 면실과 속실로 이루어진 이유는 면실의 경우 땀 흡수가 좋고, 다양한 색상을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탄성이 부족하여 착용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속실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속실보다 탄성이 좋은 실이 고무 소재가 적용된 고무사이다. 고무사는 보통 발목, 또는 발등에 부분적으로 적용되어 착용감을 더해주는 기능을 한다.
양말 방직이 복잡하다고 하는 이유는 어떤 면실을 제작하는 회사의 기술력에 따라서 부드러운 정도의 차이와 색감 표현의 차이, 그리고 세탁 후에 색 변화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정도의 차이에 따라서 면실의 가격차가 발생하며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차이에 따라서 방직된 양말의 가격 차이가 발생한다.
속실의 경우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나일론 소재가 많이 들어간 실과 폴리가 많이 들어간 실과 같이 종류가 다양하며, 어떤 속실은 신축성이 좋아서 마치 요술장갑처럼 작아 보이지만 큰 사이즈의 발도 답답하지 않게 감싸는 기능이 있지만, 어떤 속실의 경우는 모양은 잘 나오지만 식축성이 부족하여 착용감에 어려움을 주는 경우가 있다.
물론, 정답은 없다.
사람에 따라서 누군가는 그저 저렴한 양말을 찾고, 누군가는 저렴하지만 착용감이 너무 나쁘지는 않은 양말을 찾고, 누군가는 착용감도 좋으며 디자인과 색감이 우수한 양말, 누군가는 착용감도 좋으며 가장 베이직한 디자인의 양말을 찾고, 그에 맞춰서 도매상은 자신들의 판매 데이터에 의존해서 양말을 주문하곤 한다.
웃자고 하는 말로 세상은 넓고 특이한 사람은 많다는 말을 한다. (글이다 보니 순화해서 표현했다. 특이한이 보통 교육적이지 않은 용어로 통용되곤 한다.)
양말에 대한 취향도 그렇지 않을까?
저렴하고 질이 좋은 양말이 가장 선호도가 높다는 것은 누구나가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생산과 유통이라는 사회적 연결망 속에서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 위해서 공산품이 거치는 단계와 노력에 비례해서 생각하지 못했던 계산이 적용되고 그러다 보니 ‘저렴한’이라는 단어의 온도는 돈을 지불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당연하게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그렇다고 판매자의 입장에서 그러한 이해 차이를 모두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물론, 이러한 이유로 “세상은 넓고…”라는 말을 인용한 것은 아니다.
가격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디자인에 중점을 두는 사람도 있고, 색의 조합에 중점을 두는 사람, 양말이 가진 질감에 중점을 두는 사람과 단순히 브랜드만을 선호하는 사람과 같이 소비자는 다양한 각자의 우선순위 요소 속에서 범주를 결정하게 된다.
판매자, 조금 더 큰 개념으로 브랜드나 기업의 승패는 다양한 고객의 필요 속에서 더욱 많은 시장을 형성하는 집단을 발견하거나, 본인의 플랫폼으로 그들을 초대하거나, 고객의 다양성을 충족하기 위해서 다양한 선택지를 만드는 등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브랜드의 성공과 실패를 간결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일부 이유를 발견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마치 수학문제 풀이에 꼭 필요한 공식처럼 적용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때로는 노력과 환경이 맞아서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그것이 맞지 않아서 실패하게 되는 경우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한 인정 속에서 겸손이 나오며, 이기심은 사라지고 배려와 나눔을 통한 상생의 가치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학을 목표하는 아이들과 학교생활을 했었다.
모의고사 결과가 나오면 아이들과 상담을 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성장한 부분에서 느끼는 성취보다 미흡한 부분에서 느끼는 실패의 감정을 더 오래 가지게 되는 것을 봤다.
학생 본인은 성취에서 얻는 만족에 반응하지만, 미흡을 질타하는 어른들의 안목 또한 어느 정도 기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하면 발전한 부분을 칭찬하려 했다. 잘하는 부분을 발전하고 더 잘하는 방법을 찾아서 아이들이 성취감을 느끼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고민했었다. 당시에는 나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학교를 나오고 창업이라는 영역을 알아봤다.
지원사업도 알아보고, 강의도 찾아가며 나름의 앎을 쌓아갔다. 새로운 영역을 알아가며 과거에 대한 부끄러움의 무게도 더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왜 그렇게 아이들에게 진학을 강조했을까?
나는 왜 그렇게 가능성이 많은 아이들에게 오직 진학이라는 좁은 문을 설득해야 했을까?
물론, 그런 설득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지만, 의도를 가지고 오직 하나의 길로 유도하는 말 하기와 다양한 선택지를 안내하며 학생들에게 더 넓은 선택지를 알게 하는 말하기 중 나는 오직 전자에 너무 집중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퇴직 이후에 졸업생과 만남이 종종 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칠판과 교탁 의자와 책상을 두고 만나던 인연이 성인이 되어 식사와 차를 나누고 가끔은 가벼운 술잔을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내 지난 시간이 의미 있었음을 알려주는 인연에 감사와 기쁨의 눈빛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 시기에 나의 부족한 안목으로 작은 세상을 보여주려던 내 교만에 부끄러운 마음을 숨겨보려 노력한다.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생각과 고민, 걱정을 공감하며 어느덧 성인이 되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게 된다. 이야기의 시간이 이어지면서, 만남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마음속으로 기도하게 된다.
부디 그들의 삶이 세상을 좁게 살아간 어른들의 관점에 근거해서 성공과 실패로 나누어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모두의 생에 다른 삶은 존재하더라도 틀린 삶은 존재하지 않음을 그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을 기도하게 된다.
누군가는 구멍 난 양말을 빈티지라는 이름으로 선호하는 사람이 있으며, 누군가는 알록달록한 양말을, 누군가는 심플한 색상을, 누군가는 탄성이 좋은 양말을, 누군가는 얇고 부드러운 양말을 선호한다.
어쩌면 좋은 양말과 나쁜 양말의 기준은 소비자가 어떤 것을 선호하는가에 따라서 바뀌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의 삶이, 우리의 삶이,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삶이 하나의 가치를 바탕으로 판단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렇게 판단되었다고 정의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의 삶이 저마다의 기준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그러한 기준에서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에 충분한 오늘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