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여유 시간이 되면 아이와 도서관에 자주 갑니다.
요즘은 도서관도 많이 좋아졌더라고요. 어린 시절 도서관에 대한 기억은 누구도 찾지 않는, 종이가 누렇게 된 책이 진열되어 있는 그런 공간이었거든요. 아이와 함께 찾은 도서관은 조금 다르더라고요. 어른을 위한 책도 있고, 아이를 위한 책도 있으며, 신간도 많이 있고요. 가끔,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서가에 있는 도서의 제목만 읽어도 많은 깨달음과 생각의 물고 가 트이기도 하더군요.
오늘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눈에 보이는 책이 있어서 사진을 찍었어요.
“서울대 엄마가 알려주는 가장 똑똑한…”
교직에 있던 시기에는 입시에 대한 책을 많이 봤어요. 바른 정보를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바른 길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너무도 넘치는 정보 속에서 어떤 기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최근에는 조금 다른 책을 자주 보고 있어요. 마케팅, 경영, 회계, 재무 등등의 책을 말이에요.
뭐, 그렇다고 지식이 엄청난 건 아니지만, 그런 분야에 저 자신을 자주 노출시키면 조금씩 알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서관을 가면 일부러 그런 책들이 있는 곳을 살펴보곤 합니다.
저마다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곤 하지요. 월 얼마의 매출을 올리는 마케터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연매출 얼마인 브랜드가 어떻게 하는지 등등 말이에요.
공신력.
사실, 그런 것 같아요. 어떤 분야에서 정점을 이룬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해야지 공신력이라는 게 생기겠지요.
“대표님들, 이런 마케팅은 좋지 않아요. 이런 구조로 이야기를 이어가야지요. 저는 이걸 이렇게 해서 요렇게 표현했어요. 그리고 매출이 어떻게 성장했지요.”
이런 말에 사람들은 쉽게 혹하게 됩니다. 그들의 성공담을 잘 따라 하면 내게도 그런 성장의 기쁨을 느끼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저 또한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그 말에 쉽게 현혹되기도 하더라고요.
다시 교직의 경험을 이야기해 볼게요.
입시에서 성공하기 위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어느 과목의 점수가 좋아야 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이렇게 자소서를 써야 한다. 이렇게 생기부가 나와야 한다. 이런 활동을 해야 한다. 이런 경험이 있어야 한다. 수상 기록이 얼마나 있어야 한다. 출결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한다. 등등 말이지요.
많은 학부모들, 심지어 교사들도 그 말을 믿고 따르곤 하지요. 문제는, 그러한 “썰”들을 실행하는 학생들이 고생을 한다는 것이지요.
독서 기록이 많아야 한다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도 읽어야 하고, 출결 관리를 한다며 고열에도 기진맥진하게 학교에서 엎드려 버티고, 정작 중요한 공부가 있지만 수상 기록을 위해서 대회 참여 준비를 해야 하고 등등 말이에요.
“썰”의 근원을 찾아보면 모두 맞는 말인 경우가 많아요.
누구는 1년에 백 권의 책을 읽어서 어느 대학교에 갔단다. 누군가는 개근이라서 대학에 갔단다. 누군가는 어떤 동아리 활동을 해서 대학에 갔단다 등등 말이지요. 실제로 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한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한다면, 목표를 간절하게 바라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는 그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기도 하거든요.
그렇지만, 현장에 있으면 그리고 아이들과 심도 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깊이 관찰하다 보면, 은근 어떤 이유로 합격한 사례도 있지만, 어떤 이유로 불합격한 학생도 많이 관찰하게 되더라고요. 친구들과 어떤 활동을 많이 해서 대학에 합격했지만, 함께 그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합격하지 못한 사례도 있거든요. 그렇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합격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합격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에 크게 귀를 기울이지는 않아요.
학생들도 그렇거든요. 어떤 선배가 어떤 활동을 열심히 해서 대학에 합격했다고 다음 해에 모두가 그 활동에 참여하지요.
합격한 선배의 경우는 활동을 계기로 본인의 진로와 연계한 깊이 있는 고민도 있었고, 그러한 내용이 다양한 교과활동에서 표현되었지만, 본질을 모르고 행위만 따라 하는 학생들에게 그러한 깊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학교를 나와서, 부모님의 제조업을 함께 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판매로 사업을 어느 정도 확장하게 되었어요. 말이 확장이지, 줄어드는 수입과 제조업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 다른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지요.
제조된 상품이 중간유통을 거치면서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까지 프로세스를 줄여서 중간 마진을 줄였으니 당연히 가격 경쟁이 발생할 것이고,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스토어를 시작하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아무리 가격 경쟁력이 있어도, 오픈마켓에서 노출이 되지 않으니 잔치는 열렸는데 손님이 없는 상황이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 좋게 말하면 마케팅, 노골적으로 말하면 상위노출을 위한 방법에 대해서 찾아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입시와 비슷한 구조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표면적인 방법론들.
내가 가진 특수성, 내가 판매해야 하는 아이템에는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난무했지요.
본질에 대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았어요. 상당수가 표면적인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와 비슷한 구조라고 생각해요.
그 방법으로 해서 성공한 것인지, 성공의 여건이 맞는 상황에 그 방법이 적용된 건지 말이에요.
그렇다고 성공한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생각은 아니에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어떤 공통적인 인사이트를 발견하게는 되겠지요.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가끔은 비슷한 이야기에 지겹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 보석을 찾게 되는 경험도 하지 않을까요?
보석을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돌을 살펴야 하지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보석도 발견하니까 말이에요.
생각해 보면, 입시 지도를 하던 시기에도 그랬어요.
수많은 사례를 살펴보고, 학생들을 관찰하고, 그러다 보면 가끔 보석 같은 방법론을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물론, 그런 보석이 쉽게 내 손에 들어오는 건 아니겠지요. 보석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 사람의 눈에 그것의 가치가 보이듯, 무엇을 성취하기 위한 간절함이 있을 때, 제가 보석을 발견하게 되겠지요.
언젠가는 성공하리라 생각해요.
단, 우리는 그런 성공이 너무 쉽게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게 잘못이지요.
성공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공 이전에 수많은 실패가 있었다는 사실도 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결론만을 생각하며 너무 낙관적인 꿈만 꾸면서 살아가지요.
성공하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수많은 실패도 감당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글을 쓰고 보니, 성공한 사람이 갖는 모순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이 듣는 모순이라는 제목으로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