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길을 따라가면 목적지에 이르게 됩니다.
길을 안다면 말이지요.
종종 이 말을 이상하게 적용하곤 합니다.
열심히 지내다 보면 잘 될 거야.처럼 말이지요.
과연 그런가요?
가끔 제가 착각했다고 느끼는 건,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혜도 함께 쌓인다는 믿음이고,
경력이 쌓이면 업력도 쌓인다는 생각이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살아보니, 아니, 여러 어른을 만나고,
여러 선배들을 만나보니
꼭 그런 건 아니더라고요.
어른이 되어도 지혜가 없는 사람이 있고,
상급자이지만 업무 능력이 없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흐름에 맞춰서 흘러가다 보니 그 자리에 이르렀고,
흘러가다 보니 그 위치에 간 사람도 있더라고요.
모든 선배들, 어른들이 그런 건 아닙니다.
가끔 말이에요. 아주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항상 하는 생각은.
내가 손가락질하는 그 사람이
결코 그런 모습의 어른이 되기 위해서 노력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그의 젊은 시절에도 좋은 의도와 계획이 있었겠지만,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의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어떤 가치와 의도를 가지고 선택했으며,
그런 선택의 누적이 지금의 그 사람을 만들게 되었다는 생각이지요.
인생을 망하려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인생을 손가락질받으려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단지,
그때그때 선택이 쌓여서
결국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는 목적지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닐까요?
소에게 쟁기를 매이고, 밭을 갈고 있는 농부가, 멀리 있는 기준을 보고 움직이는지, 눈앞의 길만 보고 움직이는지에 따라서 밭은 가지런하게 갈릴 수 있고, 삐뚤 하게 갈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요?
때문에 저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나는 어떤 60대와 어떤 70대를 살아갈 것인가?
나이에 맞는 늙음이란 무엇이며,
나이에 맞는 어른이란 무엇이며,
나이에 맞는 지혜란 무엇일까?
나이에 맞는 온기란 무엇일까?
결코 혼자만의 고민으로 답을 찾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그들 또한 그런 고민으로 살았을 것이니까요. 그리고 나름의 방법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을 것이니까요.
조금은 먼 방향을 보면서, 주변을 보면서, 배우고, 고민하고, 관찰하며, 느끼며 살아가려고요. 다양성을 인지하게 된다면 제가 포용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포용하는 게 많아지면 더 많은 길을 알게 될 것이고, 적어도 제가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선택지가 많아지는 게 아닐까요?
순리대로 살아가면 된다는 말.
반은 맞습니다.
절대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시간은 있거든요.
벼가 익어가는 시간, 계절이 바뀌는 시간, 고난이 비켜가는 시간.
그렇지만, 그런 시간의 흐름에 그저 자신을 맡긴다고 성장하고 좋은 어른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삶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물론, 그 주도권이 주변인과 비교해서 힘의 우위에 오른다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의 삶에 대한 방향을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지요. 때문에, 순리라는 말을 믿고,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맡긴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대한 무책임한 행위이며, 스스로 주도권을 포기하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놓아도, 잡아야 할 순간에는 잡는 게 진정한 삶의 주도권을 갖는 게 아닐까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삶의 주도권을 잡으려고요.
흐름에 쓸려서 가는 게 아니라, 흐름에서 의미를 찾고, 그 가운데 방향을 인지하며 삶에 주도권을 만들어 보려고요. 너무 이기적이지 않게,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제 삶의 한 점을 찍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