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는 할까요?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던 2021년 증강현실 구현 방법에 대한 강의를 부탁받았습니다.
역시나 앞에서 이야기했었던 2020년 가상 전시회와 가상 학술제 기획이 계기가 되었지요.
마침 Cospaces 유료 사용 중이었던 시기였고, 강의에 참여하는 선생님들을 cospaces에서 학생으로 등록할 여유가 있어서 강의 부탁을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약 2시간 정도의 시간을 활용해서 증강현실 전시회 구현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면서 업무 처리에 도움이 되는 몇몇 팁을 알려드리는 자리가 되었지요. 초반에 소극적으로 참여하던 선생님들께서 강의 마지막 결과물을 보는데 동시에 선생님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교실 여기저기를 다니며 "우와!" 하던 감탄사를 연발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각나네요. 평균 연령 44의 어른들이 휴대폰 화면을 보면서 책상 위에 올라가고 교실 바닥을 보던 모습이 얼마나 인상적이 던지요.
강의를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에 메타버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메타버스는 가상현실, 증강현실이라는 범주에서 이야기가 거의 정의되던 시기였지요. 물론, 당시 저 또한 그 정도의 답변만이 가능했습니다. 아무래도, 가상공간에서 구현된 세상을 현실과 혼용해서 경험함으로 물리적 공간에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는 개념 저 또한 알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당시의 맥락에서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사고였습니다.
현장 중심에서 이루어지던 교육 활동 2020년 펜더믹을 기점으로 온라인이라는 공간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온라인이지만 오프라인 같은 현실감, 현장감이 느껴지는 교육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방향성이 필요하던 시기였으니까요.
그런데 이후에 계속해서 의문이 생기더군요. 메타버스는 단순하게 오프라인에서 하는 활동을 온라인에서 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것일까?
메타버스라는 말은 "초월적인"을 의미하는 meta와 "우주"를 뜻하는 universe의 합성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직역하자면, 초월적인 우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요.
언젠가 학교에서 수업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여느 때처럼 판서를 하면서 아이들의 이해도를 확인하기 위해서 시선을 분산하면서 수업을 하는데 평소와 다른 어떤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교탁을 기준으로 왼쪽 앞자리에 앉은 학생이 칠판을 보는 게 아니라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칠판과 반대쪽의 벽, 그러니까 교실의 앞 문의 바로 옆에 있는 창문의 아래에 있는 벽을 보면서 누군가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지요. 빈 공간만이 있었지요.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오래 일을 하다가 보면 가끔 정말 가끔 다른 친구들은 못 보는 존재를 본다거나 하는 그런 아이들을 만나게 되거든요.
그렇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 학생에게 질문을 했다가 혹시나 다른 친구들에게 오해를 살 염려가 있어서 마음은 불편하지만 급하게 판서를 끝내고 아이들을 순회지도 하는 척 그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갔지요. 그리고 다른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던 것처럼 그 아이에게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습니다.
"OO아, 혹시.. 너 조금 전에 옆에 보면서 뭐 했었는지 쌤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어?"
열심히 필기를 하던 아이는 제 질문의 의도를 생각하는 듯 잠시 멍하게 있더니, 눈을 반짝이면서 이야기하더라고요.
"아! 이번 공연에서 제가 담당한 배역의 감정이 잘 풀어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생각나서 연습해 봤었어요. 수업에 방해되지 않게 조심히 했었는데, 죄송해요!!!"
그 말에 저는 조용한 교실에서 혼자 빵! 터져서 웃었고, 그 아이에게 최고의 배우라며 제가 오해한 상황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아이의 연기력을 칭찬했지요. 물론, 그 아이는 지금 어느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고 다른 졸업생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 눈에 보였던, 아이의 책상 앞 빈 공간에서 그 아이는 무엇을 봤을까요?
모두의 눈에 비어있던 그 공간에서 아이는 아마 자신이 연기해야 하는 배역의 상대 배우를 봤던 게 아닐까요?
이러한 개념이 "초월적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메타버스에서 이야기하는 "초월적"과 제가 언급한 예시에서의 가장 큰 차이를 이야기하자면, 연기자를 꿈꾸는 아이의 눈에 보였던 "초월적 존재"는 그의 상상에만 있으나, 메타버스에서 이야기하는 "초월적 세상"은 그 공간에 참여하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발생학의 관점
누군가는 메타버스를 발생학의 관점으로 해석합니다.
인류의 정착생활이 시작되고, 삶의 영역에 대한 확장을 시도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걸어서 이동 가능한 범위까지가 삶의 영역이 되지만, 교통수단이 발달과 함께 영향력이 전해지는 범위가 넓어지게 되지요. 어쩌면 그것은 권력과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관점을 모두 이야기하기에는 인류학에 대한 이야기까지 풀어야 하니 대략적으로 기술 발전과 함께 행동반경의 확장이라는 개념으로만 이야기를 정리하겠습니다.
물론, 아직 지구의 모든 영역에 인류의 손길이 닿게 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어떤 사람들은 물리적인 영역의 확장을 이야기합니다. 가령, NASA에서 이야기하는 달, 화성 거주계획과 같은 것입니다. 언젠가 지구의 한정된 자원이 고갈되고 그것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구 밖의 어딘가로 삶의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는 관점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가상세계로의 확장입니다.
역시나 한정적 자원이지만, 가상세계로 확장된다면 아무래도 한정적 자원을 조금은 효율적으로 사용함으로 고갈되는 속도를 늦추거나 발생할 문제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는 방법론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사람의 상상력은 물리적 영역의 확장과, 가상세계로의 확장에 대한 부분만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이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확답하기는 힘들지만, 읽어봤던 대부분의 책과 강연에서는 비슷한 방향의 언급을 하더군요.
메타버스,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
가상세계로의 확장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겠습니다.
교통체증을 즐기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만약 말이지요.
어떤 하나의 시스템이 지금 시동이 켜 진 모든 자동차의 이동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신하고 있으며, 도로의 교통 방향을 참고해서 실시간보다 약 1, 2분 정도 빠르게 어떤 교차로에서 어느 정도의 혼잡을 예상할 수 있으며, 운전자의 성향에 따라서 신호 통과 가능 여부의 가능성을 산출하여 교통 체증 정도를 분석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리고 단순하게 그런 실시간 교통 상황을 중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몇 분 앞서서 예측하고, 운전자의 흐름을 적절하게 분산할 수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물론, 그러한 계산 속에서 자동차의 성능과 운전자의 운전 성향, 목적지 분석 및 도로 교통상황 등등의 다양한 요소가 데이터로 전환되어 있어야 한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선행 자료가 수집되어 있어야 하겠지만, 만약 그런 게 가능하다면 교통체증은 분명 지금보다는 상당 부분 완화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영하 작가님은 <알쓸별잡>이라는 프로에서 이야기가 갖는 힘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이 겸 험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고 그 상황에서 그들이 행동하고 대응한 방법을 더욱 깊이 인지하게 된다는 맥락으로 기억합니다.
인류는 경험으로 모든 것을 습득하지만, 그보다 발전한 인류는 타인이 했던 경험을 글, 대화, 이야기를 통해서 간접경험 함으로 물리적, 시간적 한계를 넘어서 앎의 영역을 확장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메타버스 또한 이러한 방법으로도 활용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코끼리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도 좋지만, 가상의 공간에서 진짜 같은 코끼리를 보고, 소리를 들어보며 경험하게 되는 것, 재난 현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훈련을 하면서 정말 재난 상황에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공간에서 반복된 훈련을 하고 그렇게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습득하는 것.
이러한 맥락에서 메타버스는 "디지털 트윈"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의 모든 것을 가상으로 연결하고 그것을 더욱 발전하여 현실에서 발생 가능성 있는 문제를 예측하여 해결하면서 위험의 발생도를 낮춘다는 개념으로 접근 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메타버스, 필연일까?
메타버스라는 주제에 대해서 공부하다가 개인적으로 깨닫게 된 가장 놀라운 것은 그것이 우리가 접해야 하는 필연적인 미래는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메타버스 또한 어쩌면 미래를 예견하는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말을 우리가 선택할 수도 있고, 어쩌면 우리에게 선택되지 않을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지금은 조용해진, NFT에 대한 이야기, 블록체인에 대한 이야기, ChatGPT에 대한 이야기처럼 말이지요. 글을 쓰는 지금 저는 ChatGPT를 이용해서 프롬프트를 생성하고 있으며, Stable diffusion이라는 이미지 생성형 Ai를 활용해서 배경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에 대한 관심도가 예전보다는 약해졌다는 느낌을 받고는 있습니다.
"아니, 확신도 없으면서 왜 떠든다는 거지?"
메타버스라는 미래에 대한 필연성이 없는데 저는 왜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메타버스라는 주제가 우리가 필연적으로 접하게 될 미래는 아닐 수 있지만, 무엇이 되었더라도 우리가 만나게 될 미래는 인류가 상상하는 범위 안에 존재할 것이며, 그러한 상상의 연결점을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 나온 상상의 결과물을 알아보면 좋겠다는 관점에서 저는 메타버스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타인의 상상을 소재로 기술과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음 글에서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메타버스와 관련한 미래가 어떻게 표현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