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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움직인다고 잘하는 건 아니다.

가끔 숨을 돌려야 한다.

by Inclass

부모님과 일을 하고 있다.

공장을 운영하는데, 아버지, 어머니, 나 이렇게 3명의 인원으로 공장이 움직인다.

큰 규모가 아니기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과거 나름 규모 있는 공장을 운영하시면서 사람을 관리한다는 것에서 충분히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 때문에 가족만으로 구성된 공장에 대한 고집이 지금의 결과물을 만들었다.


사람을 쓰면 되지 않느냐고 이야기하지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래도 외부인이 없으니 정기적으로 일정한 수익이 생성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으며, 때문에 공장 운영에 어느 정도의 융통성을 허락할 수 있으니 규모가 작다는 것이 무조건적인 단점은 아닌 것이다.


가족과 함께 하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아무래도 일의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경우 즉흥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내 경우는 계획성이 상당 부분 차지한다.

가족 여행을 한다면 내 경우는 일정 기간 전부터 여행을 계획하고, 숙소와 교통편을 알아보고, 관광과 먹거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만, 부모님의 경우는 갑자기 내일 갈까? 에서 시작한다.

여행 하나로 나라의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에, 비록 무계획에 대한 당황스러움은 있으나 그런 삶에도 적응하자는 생각으로 나름 적응하려 노력한다.


그렇지만, 일의 운영에는 조금 다르다.

어머니의 경우는 즉흥적으로 일단 빠르게 많이 움직이면 그게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작업을 하다가, 다른 작업에 넘어갔다가 다시 또 다른 작업으로 넘어간다. 납품 기일이 모두 같은 작업인데, 속도를 맞춘다는 이유로 하나의 작업을 하고, 설정을 다시 잡아서 다른 작업을 돌리고 다시 설정을 잡고 다른 작업을 돌린다. 분명, 전반적으로 본다면 설정을 다시 잡는 만큼 기계가 작동되지 않는 시간이 더해지기 때문에 전체적인 일의 완료 시간은 늦춰지지만 이상하게 그러한 방식을 고집하신다.

짧지 않은 시간 관찰 결과로는 바쁘지 않으면 뭔가 잘 못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항상 집 청소를 한다면서 하루는 A서랍에 물건을 분류 없이 몰아서 넣고, 어떤 날은 B서랍에 물건을 분류 없이 몰아서 넣고, 그러다 보면 물건 하나를 찾기 위해서 A부터 F까지 모든 서랍을 열었다가 닫았다가를 반복하게 된다. 일의 방식도 그러하다.

여러 일을 돌아가면서 하다가 보니 수량 파악에 허점이 생기고, 어떤 기계의 작업 결과물에서 오류가 발생했는지 기억하는 게 쉽지가 않다. 손은 많이 가고, 힘은 더 들이는데, 보람은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차라리 남이라면 쉽게 이야기하겠지만, 자칫 잘 못 이야기 했다가는 마음만 상할 것 같아서 그냥 내가 조금 더 바쁘게,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이자는 생각으로 일을 하고 있고, 요즘은 미리 어떤 변화를 시도하기 전에 나름의 방법으로 대안을 만들어 두기도 한다. 그 대안의 하나가 미리 아버지를 설득하는 부분도 있다.


이런 상황을 접하면서 내가 하게 되는 고민은 나중에 내가 공장을 운영하게 된다면, 그리고 만약 내가 채용한 사람이 어머니와 같은 성향의 사람이라면, 나는 효율적으로 공장을 운영하기 위해서 어떻게 그 사람을 설득해야 할 것인가? 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그때가 되어서도 내가 지금 부모님을 보조하는 것처럼 그 사람을 보조할 수는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조직원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힘을 합치기 위해서는 모두의 가치가 어느 정도 비슷해야 한다. 단순하게 많이 벌자는 일차원적인 목표가 아니라, 어떤 가치로 그들이 움직일 것이며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가치에 의존해서 결단하게 하느냐로 서로의 뜻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한 가치의 합치가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조직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부모의 시대는 빠르게 움직이고,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시대였다.

곰인형 눈알을 붙여도 더 많이 붙인 사람이 많이 벌었고, 길거리 음식점을 한다고 해도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손님에게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식당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있다. 물론, 그런 능력이 나쁜 것이고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택과 집중의 필요성도 함께 중시되는 시대인 것이다. 집중해야 하는 일에 더 빨리 많이 집중하고, 여유 시간과 에너지를 만들어서 내일을 위한 나 자신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그렇게 가치는 바뀌고 있다.


챗GPT와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지만, 그것을 활용해서 일을 효율적으로 끝내고 여분의 에너지를 모아서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지금의 시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고작 양말 짜는 일에 챗GPT와 인공지능이 무슨 필요냐고 하겠지만,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의 기계보다 더욱 많은 센서가 적용된 센서를 활용해서 공장의 작업 프로세서가 가상화되고 예측 가능하게 되면서 생산성이 급격하게 발전할 수 있을 수도 있다. 그러한 시스템을 다루며 함께 일 할 사람에게 일에 필요한 기본 역량을 가르치는 것은 관리자의 의무이고 책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쁘다는 것이 미덕이 되는 시대가 다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항상 옳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니 잘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쉼의 여유를 만들며 반성과 계획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살아갈 필요가 있고, 그렇게 일을 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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