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자율학습 지도를 하고 있었다.
그 사건의 시작에서 기억에 각인된 첫 번째 장면은 교무실로 노크하고 들어와서 내 맞은편 여선생님을 찾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찾아온 아이가 선생님과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였고, 그렇게 잠시 자리를 비웠던 여선생님은 잠시 후 교무실에 다시 들어와서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옆 자리의 다른 여선생님과 무언가를 속닥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용한 교무실, 마주하고 있던 내가 듣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은 행동에 나름 눈치를 보면서 자리를 비켜줬다. 그게 시작점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남학생 하나가 여학생들의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하고 다닌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그리고, 내 맞은편 자리의 여선생님 또한 그 상황에서의 피해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학생은 휴대폰 카메라로 여학생들의 치마 속을 촬영하고,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순회 지도 하는 동안 몰래 뒤에서 선생님의 치마 속을 촬영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장면을 멀리서 목격한 남학생들이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생각에 이 사건을 여선생님에게 이야기했었고, 사건이 수면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상황을 접수한 학교의 입장에서는 사실 확인이 필요했다.
해당 남학생의 휴대폰을 수거했고, 사진을 확인했다. 그리고 정말 그런 사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이의 사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치마 속 사진이 있었는데, 문제는 그것이 본교 학생인지, 교사인지, 외부인인지 여부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진에는 그러한 정보가 보이지 않았고, 지금과 같이 사진 파일에 시간이나 GPS정보가 남아있던 시기가 아니었기에 더욱 그러했었다. 가해자는 있으나 피해자가 명시되기 힘든 상황이었다. 물론, 신고한 학생들에 의해서 사진의 피해자 중 하나가 여선생님이라는 것은 유추할 수 있었지만 그걸 어떻게 확인한다는 말인가?
학교에서는 학교 담당 경찰에게 사건을 보고했다. 당시 절차로는 그게 맞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항상 담당자가 가진 시계와 사건의 피해자가 가지고 있는 시계의 속도는 다르게 느껴지는 법이다. 학교에서 나름 절차대로 진행되는 과정이 피해를 당한 여선생님의 입장에서는 느리고 더딘 느낌이 들었다. 그러기에 여선생님은 무엇인가 했어야 했다.
자신이 겪은 상황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그리고 그 글이 퍼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여론이 만들어지고, 언론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간제 여교사라고 학교에서 사건을 덮으려고 한다.
젊은 여교사라고 학교에서 소극적으로 대처한다. 학교는 사건을 덮으려 한다.
자극적인 글귀가 인터넷에 나오기 시작했고, 심지어 뉴스에도 보도되었다.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학교라는 조직이 사건을 덮으려 하고 여교사 혼자서 이 상황과 싸우려 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 제목만 보고 당시 언론을 살피지는 않았다. 마음이 상한 부분도 있지만, 그 선생님의 수업과 업무에 대해서 내가 모두 보강을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언론과 당시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상황은 어수선하고 학교는 시끄러웠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당시 학교 담당 경찰관의 업무 처리 미숙함으로 문제 해결이 늦어지게 되었고 이러한 늦어짐의 과정을 해당 선생님은 학교에서 상황을 덮는다고 오해하게 되었으며, 학교 업무 담당자의 중간자 역할에 대한 미흡 또한 오해를 더하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알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보통의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가해 학생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지고 많은 교사들이 충격을 받았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학생이었고, 특유의 능글맞음과 밉지 않은 행동으로 선생님들께 귀여움을 받았던 학생이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학교 생활에 충실했던 아이였고, 한부모 가정에서 할머니와 학습 능력이 부족한 어머니, 외지에서 어려운 일을 하시는 아버지 밑에서 장남으로 생활하며 동생을 돌보는 아이였다. 전형적인 순박함이 느껴지는 할머니와 어머니였다.
사건이 수면 위로 오르고 학부모를 모셨던 그때, 할머니와 함께 학교를 방문해서 포대기로 덮은 아이를 업고 복도 중간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며 오고 가는 어른들에게 죄송하다고 인사하던 그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이 역시 순박했고, 애살이 있었지만, 이성 관계에서는 매우 서툰 아이였고, 그러다 보니 올바른 이성과의 관계를 만들지 못했던 것 같았다.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의 시간 아이를 지켜봤던 선생님들의 입장에서, 그리고 그 가정의 상황을 아는 이들의 입장에서 아이의 행동이 옳지 않음은 알았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할 기회는 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기에 아이에게 퇴학보다는 전출에 대해서도 고려해 보라고 귀띔을 주기도 했다.
학교와 경찰의 업무 처리가 미숙하여 더디게 일이 처리되던 그 시점에 여교사는 여학생반 수업에 들어가서 어떤 학생이 가해학생인지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공개했다. 말은 총알보다 빠르게 번져나갔다.
가해 학생이 전학을 알아보려 다른 학교에 가면 소식을 접한 그 학교 학생들이 창밖으로 야유를 보냈다.
크지 않은 동네였고, 그만큼 아이에 대한 소식은 누구보다 빠르게 퍼져나갔다. 아이를 받아 줄 학교는 없는 것 같았다.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아이가 옳지 않은 행동을 한 것은 맞지만, 교육적인 관점에서 적어도 모두가 아이의 잘못을 손가락질하지는 않는다. 어떤 죄인에게도 변호사를 붙여주는 것처럼, 징계위원회에서도 옳지 않은 행동을 한 아이에 대하여 어떻게든 최고의 징계를 주장하는 교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기회를 주자며 아이를 변호하는 교사의 역할을 나누게 된다. 물론, 징계위원회 회의 과정에서 오고 가는 내용이 모두 공개되지는 않는다.
여교사의 경우는 그 규칙을 어겼다.
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고, 역시나 여학생반에 들어가서 남학생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던 교사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그들의 발언을 이야기 함으로 학생과 교사 사이에 균열을 만들었다.
여학생들은 분노했고, 몇몇 학생들은 무리를 만들어서 서명운동까지 계획했다.
당시는 교사 상피제(부모가 교사로 재직하는 학교에 자녀가 학생으로 있는 것을 금지하는 것)가 시행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단순히 교사와 학생의 문제보다는 부모와 자녀의 갈등이 되기도 했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여교사는 휴직을 했다.
기간제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긴 휴직을 했고, 해당 기간 동안 다른 선생님들이 그분의 수업을 들어가야 했다. 동 교과 선생님들의 보강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불가피하게 자습을 해야 하기도 했었다. 휴직이 끝나고 복직을 했고, 그와 동시에 퇴직을 했다. 상여금도 받았다. 그리고 그분의 수업을 대신할 교사가 구해지는 시기까지 학생들은 자습을 해야 했다.
역시나 사건이 마무리되고, 교육청에서 감사를 나왔다.
일의 처리 과정에 대하여 업무 라인에 있는 교사들에 대한 심문 아닌 심문이 이어졌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에 대한 질책이 이어졌다. 징계의 결과로 학교는 한동안 교육청에서 시행하는 사업 선발 대상에서 열외가 되었다. 선발 대상 열외로 인해서 다음 해의 학생들은 이전에 받았던 다양한 혜택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아직도 그때의 상황을 생각하면 무엇이 옳은지 나는 잘 모르겠다.
가해 학생이 옳지 않은 것은 맞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벌을 줘야 하는 것일까? 이후의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사회에 융화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그렇게 어른이 되어 세상에 대한 적의만을 배운 아이가 과연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 것인가?
문제의 상황을 단지 남성과 여성을 나누고, 기성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로 나누어서 문제를 해결해야 했을까?
민감한 문제이기에 누구에게 뭐라고 쉽게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문제이다.
어쩌면, 나의 성별로 인해서 이야기가 충분히 왜곡될 수 있으며, 듣는 이의 성별로 인해서 역시나 오해받기 좋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을 한다.
시간이 지나서 수능 감독을 하는데, 가해 학생이 앉아있는 것을 봤다.
수험표를 보니 원서를 접수한 학교 명이 없었다.
시험지를 수험생의 책상 위에 올려두는데, 아이가 나를 보면서 슬그머니 끔뻑거리는 게 보였다. 마음이 아팠다. 아이는 그 시간 이후로 어떤 삶을 살았을까?
자신의 과오에 후회하며 좋은 삶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과오를 만천하에 폭로해서 자신의 삶이 보통의 학생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했음에 대해서 복수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을까?
부디, 그 사건이 아이에게 배움의 기회가 되고, 옳지 않음에 대하여 민감하게 경계하고 더 좋고 바른 삶을 살아가는 어른이 되어있기를 조심스럽게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