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에 순응하는 것도 선택의 문제다.

소제목을 꼭 써야 하는가?

by Inclass

이런저런 이유로 블로그, 브런치를 한동안 하지 않았다.

바쁘다는 이유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 피로의 누적이라는 핑계도 있었지만, 글쓰기가 귀찮다는 것과 함께 그보다 좋은 무엇이 생겨서 그런 것도 있었다.


글을 쓰지 않고 생활하는 게 나름 좋았다. 하루를 살아가고, 저녁을 맞이하고, 그 순간에 끌리는 것을 했다가 잠자리에 들고. 그렇게 한동안을 보냈다.

편함이 누적되면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허비한다는 죄책감이 발바닥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공기보다 무거운 기체가 바닥부터 누적되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호흡을 멈추게 하는 것처럼, 그렇게 죄책감이 내 목까지 차오르게 되었다.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읽기를 바란다는 생각보다는 일단 내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래서 한동안 멈췄던 브런치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니, 시작하려 했다.

무엇을 써야 하는가? 고민을 하다가 하나의 제목을 잡았다. 어렵게 제목을 정하고 다음 줄을 보니 소제목을 써야 했다. 또 무엇을 써야 하나? 제목과 소제목을 가지고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려 하는가? 아니,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어떤 제목과 소제목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빈 모니터를 보며 앉아있다가 컴퓨터를 끄는 게 며칠 반복되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제목을 꼭 써야 하는가? 제목에 따른 내용만 떠오르면 그렇게 써도 되는 것 아닌가? 어차피 내 글이 나라를 구하는 일도 아니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글도 아니며, 그렇다고 내가 어디서 인정받은 명필가도 아니며, 내 글이 업데이트된다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벌 때같이 달려 들어서 환호하고 손뼉 치는 것도 아닌데 나 혼자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그냥, 편하게, 내가 토로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보면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그 마음 그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3일. 오늘로 4일 차. 과연 언제까지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연제를 할런지도 모르지만, 최대한 꾸역꾸역 그렇게 써 보려 생각하고 있다.


어제, 처음으로 소제목을 비우고 글을 써 봤다. 그리고 발행을 눌렀다. 그래도 별 일은 없었다.

소제목이 없어도 글은 발행이 되었다.


왜 나는 소제목 따위에 발목이 잡혀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것일까?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던 시절에는 몰랐지만, 그 틀을 벗어나서야 내가 얼마나 한정적인 공간에서 살았던가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물론, 그것에 대한 비아냥이나 회의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곳을 나오고 나서야 지금의 교육이 많은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에 순응하고, 조직에 순응하기 위한 도구적 인재 양성에 집중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생들은 대학이 원하는 인재상을 맞추기 위해서 노력하고,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은 조직이 원하는, 소위 그들에게 급여를 줄 집단이 원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서 학생이라는 존재가 성인이 되어서도 어떤 규칙과 규율에 머물러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존재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이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모두가 창업을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삶의 선택지에서 취업만을 목표로 살아가는 것 또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마치 직장을 얻지 못하면 실패한 삶이라는 듯 스스로를 측은하게 여기는 관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움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필요도 있는데, 그런 선택지를 고려하지 못하도록 은연중에 강요하는 관점이 좋지 않았다.




규칙이 그러해서, 규정이 그러해서.

가끔 그런 단어가 벽처럼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규칙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어.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다니 억울하지만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우리는 자주 그렇게 생각한다. 정해진 답변을 선택해야 하고, 그들이 원하는 답변을 유추해야 하는 질문지를 마주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유롭게"라는 말이 포함된 질문에는 당황하여 아무 말도 못 하게 된다.

자유롭게 질문해 보세요.


그렇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규칙과 규정은 하나의 약속이다. 따지고 보면 법 또한 사람들이 정한 약속이다.

물론, 사회적 관계로 얽혀 있는 존재로서 그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결코 움직이지 않는 벽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때로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불합리한 벽이 존재하기도 하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조리원에서 보내던 시기였다.

갑작스럽게 친척분께서 상을 당하셨다. 늦은 시간에 받은 연락이었고, 다음날 아침 일찍 어른을 모시고 가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조리원을 나오게 되었다. 문제는 병원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 과정에 생겼다. 병원 주차장을 담당하는 어른께서 아침시간의 출차를 금지한다는 것이다. 출차를 원한다면 병원 진료가 시작되는 9시부터 가능하다고 했고, 아직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주차장을 관리하는 어른께 상황을 설명했고, 어른은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출차를 허락해 주셨다.


사실 마음이 매우 상했었다. 예정된 일도 아닌데 규칙이라는 이유로 주차장을 열어주지 않다니? 그렇지만, 둘러 생각하며 어른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 생각하다 보니 워낙 환자 출입이 많은 병원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작은 음료수를 들고 갔었다.


당황스러운 건 그때부터였다.

주차장 관리실에 음료 상자를 드리는데 이게 뭐냐고 물어보시는 것이었다.

나는 아침에 있었던 상황을 설명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차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규칙이 그러해도 그분은 그 규칙을 어기고 내게 편의를 봐준 것으로 이해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음료를 받는 관리 어른께서 불같이 화를 내시며 그 양반이 그러지 말라고 전에도 그랬는데 아직도 그러냐며 노발대발하시면서 이참에 주차 관리인을 바꿔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오후에 봤던 분이 건물주였고, 이 병원에서 출차를 제한하는 규정은 없으나 오전 관리자가 종종 월권을 행사한다는 민원을 들어왔던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주차장 관리실에는 다른 어른이 앉아계셨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절대적이지 않은 규정이라는 벽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침에는 꼭 밥을 먹어야 한다거나, 우유를 먹어야만 키가 큰다거나, 대학에 가야 성공한다거나, 평일에 일 하고 주말에 쉬어야 한다거나 등등 말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침을 먹는 게 좋지만 꼭 밥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으며, 우유를 먹지 못하더라도 칼슘 섭취를 위한 다른 음식을 선택해도 되고, 대학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성공의 가능성은 있으며, 평일에 휴일을 정하고 주말에 일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만든 규칙 때문에 좁은 세상에서 살아갈 필요가 없으며, 세상이 정한 규칙이 절대적이라는 믿음 안에서 불합리함을 묵인하고 살아갈 필요도 없는 것이다.




취업에 실패한 제자가 있다. 아니, 내 관점에서는 실패가 아니다. 다른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그냥 이야기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실패라는 단어를 사용하겠다. 그게 통상적으로 우리가 이해하는 개념이니 말이다.


제자가 선택하려는 직업은 그렇게 매력적이지도 않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그 아이가 공부했던 길이 그 길이기 때문에 아이는 그 직업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다. 정작 본인도 그 일에 대한 매력을 인지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아이는 자신이 살아온 길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길이 필연적이라는 생각으로 참고 그 길을 어떻게든 걸어가려 준비하고 있다. 어쩌면 스스로가 만들어온 규칙 속에서 스스로를 가두는 모습이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규칙에 순응하는 삶. 어쩌면 그것은 순응이라는 단어로 치장된 울타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규칙에 순응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은 내게 있다.

우리 각자에게 있는 것이다.

규칙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선택인 것처럼, 규칙에 순응하지 않는 것 또한 우리의 선택인 것이다.

소제목에 아무런 멘트를 쓰지 않아도 된다. 가끔은 공란을 둬도 된다.

그렇게 가끔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 또한 선택이다. 규칙안에 삶이 전부는 아니다. 가끔은 규칙 밖의 삶 또한 귀한 것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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