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14일차
메타버스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미래"라는 주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대는 변하고 기술도 변하며 그에 따른 삶의 방식도 많이 바뀌게 되지요.
열심히 일 하는 개미와 노래하며 놀던 배짱이의 이야기는 이제 놀면서도 돈을 버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이솝우화의 교훈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시대의 개념이 바뀌었으니까요.
인터넷의 발달로 단순히 지식과 정보의 전달뿐만이 아니라 여행을 다니는 모습, 즐겁게 여가를 즐기는 모습을 콘텐츠로 제작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일의 방식도 바뀌었습니다. 약속된 장소에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방식도 아직 주류를 이루기는 하지만, 유연근무제라는 이름으로 특정 기간 동안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의 양을 충족시키기만 하면 되는 일의 방식도 생겼습니다.
시대는 변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가진 가치도 바뀌고 있지요.
인공지능의 발달은 다양한 부분에서 사람이 하던 일의 영역을 대신하고 그로 인해서 사람의 노동력이 투입되는 공간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있습니다.
사람이 음식을 주문받고, 사람이 조리된 음식을 서빙하는 시대였지만, 언제부터인가 손님들에 테이블에 앉아서 태블릿을 이용해서 음식을 주문하고, 로봇을 이용해서 서빙하는 매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보면, 이러니 사람이 일 할 여건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정말 사람이 일 할 자리는 사라지게 될까요?
가족들과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습니다. 학교 생활에 안정적으로 적응한 것 같은 아이를 응원하며 칭찬하는 의미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치킨을 시키게 되었지요. 가족들이 손에 음식이 묻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순살을 시키려고 하는데, 배달 플랫폼에서는 순살로 제가 원하는 조합의 메뉴를 선택할 수 없게 되어 있더라고요. 답답한 마음에 몇 번이고 다시 봤는데, 여러 종류의 조합 중에서 우리 가족이 계획했던 메뉴의 조합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상하더라고요. 결국, 매장에 전화해서 제가 원하는 조합의 메뉴 주문이 가능한지 여부를 물어보니 당연히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주문을 하고, 사장님께 해당 조합이 배달 플랫폼에는 공지되어 있지 않아서 전화를 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면서 곧 업데이트하겠다는 답변을 듣게 되었지요.
플랫폼의 활용, 나아가서는 인공지능의 사용이 사람의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다른 면으로는 플랫폼을 만든 사람이 고려한 선택지 안에서 사용자는 머물러야 한다는 단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제품 구입 및 서비스에 대한 문의 과정에서 이런 경우는 더욱 자주 발생합니다.
내가 원하는 a라는 서비스가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 모를 경우 서비스를 받기 희망하는 사람은 오히려 더욱 많은 선택지 속에서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되지요.
이상한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문의를 하는데, 올바를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고민해야 하고, 내가 받을 서비스를 문의하기 위해서 어떤 항목에 접근해야 하는지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되지요.
물론, 인공지능과 대화한다면 지금의 ARS 서비스의 단점은 어느 정도 보완 되겠지만, 역시나 인공지능이 학습하지 못한 창의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용자를 만나게 된다면, "해당 부분에 답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라는 답을 듣게 될 것입니다. 또는, Chat GPT와 같이 그럴듯한 거짓말을 듣게 될 수도 있고요.
사실,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그리고 대중에게 이전보다 가까워졌다고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보급된 상황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대중화를 이루기에는 멀었다고 할 수 있지요.
대중화가 되지 않은 기술이다 보니 희소성이 부여될 것이고 마치 그것이 더 우수한 것처럼 사람들에게 인식될 수 있습니다. 여러 직업 영역에서 더욱 그러하지요. 물론, 생산라인에 적용되는 공업용 기술이나, 단순 작업에 활용되는 로봇의 경우는 조금 다르겠지만, 기타 서비스업을 비롯하여 상당 부분에서는 사람보다 기계가 더 희소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인식에는 그것이 더 좋게 보이고, 그로 인해서 사람의 자리가 빼앗긴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조금 생각을 바꿔 보겠습니다.
멀지 않은 미래를 가상해 보지요.
가족들과 특별한 날 외식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서비스를 받고, 가족들과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요.
집 근처에는 많은 식당이 있습니다. 레트로 음식을 기계가 조리하고, 로봇이 서빙하는 식당이 있을 것이고, 어떤 식당은 최소한의 인간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고, 로봇이 서빙하는 식당이 있습니다. 식당에서 로봇이 얼마나 신형이고 인간화되었는가의 차이는 있으나, "로봇이 서빙을 한다"는 기본 개념은 이미 보편화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 식당 중 어디를 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최근에 생긴 식당에서는 인간이 요리를 만들고, 인간이 서빙을 하는 식당이 문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식당을 선택하게 될까요?
지금은 사람이 서빙하는 식당이 흔한 시대이고, 로봇의 서빙이 희소성을 가지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만약 반대로 로봇의 서빙이 일반화된 시대에 사람이 서빙하는 모습이 희소성을 갖게 된다면, 그런 식당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지 않을까요?
초고화질 카메라, 디스플레이가 상용화된 지금의 시대에 과거 레트로 카메라, 아날로그 카메라의 매력을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초고음질의 음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중에 여전히 카세트테이프와 LP음악을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로봇이 사람의 건강을 진단하고, 치료하며, 약을 주는 것이 상용화되는 어떤 미래에, 여전히 사람이 사람을 진료하는 것을 더욱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전히, 사람이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는 시대는 이어질 것이라 저는 생각한다는 말이지요.
정답은 아닙니다. 그냥, 저의 상상이지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사라진 직업도 있습니다. 그런 과거 때문에 우리는 미래에도 그러한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꿈꾸는 나의 미래에 사람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존재한다면, 그것의 형태는 어떻게 바뀌더라도 사라지는 일이 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의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로 결론이 나오는군요.
본질. 본질에 충실하다면 변화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