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하는가 두고 보자.

매일 쓰기 18일차

by Inclass

매일 일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를 지났습니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일을 하러 가다 보니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지나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역시나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지나가는 사람이지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이 아니다 보니 그 시간에 지나는 사람은 쉽게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날이 더워도, 해가 뜨거워도, 폭우가 오는 날에도 항상 그 시간에 그 길을 걸어가더라고요.


참 이상하지요?


매일 그렇게 보다 보니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아침마다 보는 그 사람의 한결같은 성실함에 마음속으로 응원을 하게 되더라고요.


가끔 그런 경우가 있어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마주치는 사람. 그리고 그 횟수가 늘어나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눈에 들어오는 경우 말이지요. 이성적으로 다가오거나,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한결같은 모습을 응원하게 되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대학생 시절, 중앙 도서관 1층에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던 특이한 아저씨가 있었어요. 큰 키에 곱슬머리, 황금색으로 락커칠 된 오토바이를 타고 매일 아침 8시 30분이면 도서관 입구에서 허름한 티셔츠와 면바지 차림으로 혼잣말을 시작하지요. 절대, 대중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냥,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처럼 말 하기 시작하지요. 왜, 어떤 문제에 너무 심취해서 고민하다가 그것을 생각으로만 하면 머리가 복잡하니 혼자 언어로 풀어내는 느낌 있지요? 그렇게 혼자서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러다가 12시 정도가 되면 사라져요. 오토바이를 타고 말이지요. 그리고 1시쯤이면 다시 나타나고요. 오후시간을 오전처럼 또 그렇게 혼자서 이야기하다가 오후 4시가 조금 지나면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지요.


선배들에게 듣기로는 학교 법대생이었는데, 여자친구가 떠나고 정신이 이상해졌다느니 이런저런 말이 많았어요.


그런데, 재미난 건, 은근히 많은 사람들이 그 아저씨를 의식하고 있더라고요.

정말 어쩌다 그 아저씨가 자리에 없으면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 그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염려하는 글도 종종 올라오고 말이지요.


국민 예능으로 불렸던 "무한도전"도 제겐 그랬어요.


어떻게 볼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TV 프로그램을 챙겨보지는 않았거든요. 개그 콘서트도 군대에서 처음 봤었느니 말이지요.


어떻게 하다가 무한도전을 봤어요. 처음에는 우연히 주말 오후에 TV를 보다가 봤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고 역시나 TV에서 하더라고요. 몇 년이 지나고,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주말 오후에 TV를 채널을 돌리다가 역시나 무한도전이 하는 것을 봤어요. 신기하더라고요. 그렇게 오랜 시간 방송을 한다는 게 말이지요.

그때부터 봤던 것 같아요. 이후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말이지요. 과연 언제까지 할까? 얼마나 할까? 어떻게 내용을 이어갈까?


행운이 올 기회를 만들어라.


뜬금없이 느껴지겠지만, 꾸준함 속에서 행운이 올 기회가 많아진다는 생각을 해요.


내가 그 자리를 지킨다는 사소한 행위가 내게 행운이 올 기회를 만든다는 생각을 한다는 말이지요.


물론, 행운은 어느 날 우연하게 누군가에게 갈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꾸준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에게 행운이 올 기회가 생긴다는 생각을 하지요. 물론, 반론을 이야기할 수도 있어요. "나는 평생 내 자리를 지켰는데, 지금 내 삶을 봐라.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냐?"처럼 말이지요. 맞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약간의 변명 같지만, 저는 꾸준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에게 필연적으로 행운이 온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행운을 맞이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같은 맥락으로 자신이 지키는 자리에 변화를 준다고 행운이 올 확률이 낮아진다는 말은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때로는, 변화를 줘서 행운이 올 확률도 높아지니까요.


애매하지요?


하나의 자리를 꾸준하게 지키는 것으로 자신의 인내심과 지구력이 성장하는 기회가 된다면 그것은 분명 행운이 올 기회를 높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 자리를 지킨 사람의 작은 시각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바탕으로 자신이 지킨 자리의 승률이 높은지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메타인지라고 하는 거지요. 외부적 시각으로 자신의 상황을 분석하는 안목이요.


예를 들어서, 급여생활자라고 가정합시다. 급여 환경이 좋은 건 아니에요.

이직이 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또는 버티는 게 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으니 어떤 게 답이라고 하기는 분명 어려워요. 그렇지만, 하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직급의 급여생활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하고, 그 정도 수준으로 본인을 맞추는 사람은 어디서나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부속으로 자신의 가치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동일한 직급의 급여생활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조직을 움직이기 위해서 어떤 흐름 중 하나로 작용되고, 그것이 어떻게 수익 구조와 연결되는지, 그리고 조직의 시스템이 구성원에게 어떤 강점과 약점을 더하는지에 대한 분석을 계속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동일한 환경, 동일한 직급에서 일을 하더라도 분명 이후 그들이 누리는 삶의 영역은 다를 것이라고 확신하지요.


전자의 경우라면 어쩌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후자의 경우는 분명 자신의 일을 해야 하는 경우겠지요.


행운이 올 기회를 만들어야 해요. 그것은 꾸준한 인내 가운데 올 수도 있고, 성장에 기초한 변화 속에서 만날 수도 있어요. 가끔 정말 가끔 누군가에게는 그냥 우연히 그 길을 지나는 게 행운이 올 수도 있겠지만요. 그렇지만 그건 그냥 요행이 아닐까요? 요행을 바라지 말고, 가능성을 높이는 삶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 지금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요. 그래야 내 삶을 외부적 시각에서 분석할 수 있으니까요.

왜, 언젠가 그런 이야기했었지요? 훈수는 쉽다고 말이지요.

내 삶에 매몰된 시각으로 상황을 분석하지 말고, 내 삶은 외부적 시각에서 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럼 훈수하기 쉬울 거예요. 그렇게 조금씩 바꾸다 보면 행운이 올 기회는 조금씩 늘어나지 않을까요?

매거진의 이전글우리는 규칙 속에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