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19일차
교직을 준비하는 제자가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교단에 설 자격을 얻게 되었지요.
생각보다 교단에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니, 정말 어렵지요. 자신이 선택한 전공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난이도의 차이는 있지만, 교직 경험이 없는 지방대 출신의 초임 교사에게 학교라는 자리는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말처럼, 단기간의 기간제 교사 자리가 있고, 1년 단위의 장기간의 기간제 교사 자리가 있습니다. 12월 말에서 1월, 그리고 2월의 시기는 보통 1년 단위의 장기간 기간제 교사를 모집하는 시기이고, 3월부터 학기가 시작되는 동안에는 보통 단기간의 기간제 교사를 모집합니다.
학교라는 조직이 아이를 가르치고, 선생님이라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인만큼 사람에 대한 예우가 바르다고 생각하지만, 기간제 자리를 구하는 초임 교사에게는 너무도 냉정한 자리입니다. 1년의 계약이 끝나고 당연히 계약이 연장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를 통해서 그 자리의 교사를 모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다른 학교를 알아봐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기간제 모집 공고를 보고 원서를 지원했지만, 합불 여부에 대한 소식이 없어서 무작정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제자의 경우는 지난 1월과 2월, 지역에 올라온 모집 공고의 대부분의 학교에 원서를 제출했지만 아무 곳에서도 합불에 대한 통지를 받지 못했지요. 그 기다림의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저 또한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누구보다 그 힘겨움에 공감이 가고, 시간이 그렇게 지났지만, 합불 여부를 문자로 알려주는 것 하나조차도 변하지 않은 시스템에 분노하기도 하고요, 미리 정해둔 사람이 있지만 행정상 절차를 위해서 모집 공고를 해서 다른 사람을 수고스럽게 하는 사례를 보면서 기성세대의 이기심에 분노하기도 했어요. 적어도, 제가 기간제 지원을 했던 시기에서 어느덧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기간제 교사에 대한 어떤 배려도 전혀 발전하지 않았으니까요.
학교에서는 경력직을 바라지요. 어디서든 학교 경력이 있는 교사를 바라고 있어요. 그렇지만 아이는 아직 아무런 경력이 없었어요. 이제 막 대학원을 졸업했으니까요.
그래도 교직 경력이 있는 저를 보면서 아이는 선생님이 부럽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의 관점에서 제 과거 경험은 그래도 지금보다 좋다고 생각하겠지요. 힘든 시기이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이해가 가더라고요. 이미 학기는 시작되었고, 생각보다 자리는 잘 나오지 않으니까 마음이 많이 힘들겠지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또한 편한 삶을 살았던 건 아니거든요. 제 학교 생활도 치열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누군들 그런 삶을 살아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지나고 보면 모두가 힘든 과거를 살았어요.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항상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었고,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관계들이 있었으며, 최악이라고 생각하던 순간들이 있지요.
나만 그런 삶에서 허우적거리는가 생각하고 있을 때, 가끔 내 주변의 누군가는 그런 삶을 살아가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 사람의 삶은 여유가 있는 것 같고, 그 사람은 평온한 것 같으며,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은 항상 행복한 것 같은 사람 말이에요. 그런데, 정말 그 사람은 그렇게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을까요?
내가 살아온 삶은 타인의 눈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나의 표현으로 타인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내 삶을 보고, 말하고 표현하는 방법으로 타인에게도 전달되는 것이지요.
가령, 매일 내 삶에 대해서 투덜거리고, 불평불만하며 항상 찡그린 표정에서 살아간다면, 타인의 눈에서 제가 살아가는 삶은 투덜거림이 가득하고,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며, 어려움이 가득하다고 생각하게 되겠지요. 그러면 그는 제 삶이 적어도 본인의 삶보다 불행한 환경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같은 맥락에서, 내 삶에 대해서 항상 감사하고, 행복해하며, 사랑이 넘치는 관점으로 세상으로 보고 그런 언어와 행동으로 세상을 표현한다면, 나를 관찰함으로 내 삶을 보는 타인은 내 삶이 행복하고, 감사하며, 평온한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보냈던 학교 생활도 쉽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 가운데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했고, 제가 알아가는 것에 감사했으며, 일을 하면서 저 자신이 성장한다는 기쁨을 누리면서 살았거든요. 한 학기에 4개 부서의 일을 하고, 5개의 동아리를 운영하고, 서로 다른 2개 학년에서 3개 교과를 지도하던 시기가 있었어도, 저는 그때가 힘들었다기보다는 그때마다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동료 선생님들과 웃으면서 떠들던 기억이 더 많이 남았거든요. 혹여 좋지 않았던 일도 있었지만, 그것은 그때의 에피소드일 뿐이니까요.
그런 관점들이 아직 교직을 시작하지 않은 아이에게는 부러웠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겠지요.
휴남동 서점의 저자 황보름 작가님의 이야기가 자주 떠올라요.
책을 읽는 이유는, 내가 구렁텅이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 구렁텅이에 나 혼자만 있던 것은 아니라는 동질감에서 위로를 얻게 된다는 맥락의 글이 있었어요. 그러고 보면, 삶이 힘든 것은 우리가 구렁텅이에 빠져서 힘든 게 아니라, 그 구렁텅이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기에 힘든 것이 아닐까요?
내일도 다시 아침이 오겠지요. 어쩌면 우리는 행복한 오늘을 기대하며 아침을 시작할 수도 있고, 어쩌면 우리는 정말 거지 같은 삶에 우리를 또 갈아 넣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행복하게 시작하는 그의 삶과, 거지 같은 삶을 시작하는 우리의 삶은 결국 비슷하지만 그 삶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가에 달린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봤어요. 정말 그것이 관점에 영향을 받는다면, 한동안은 좋은 것만 보는 연습을 해 볼까 싶어요. 바꾸는 게 힘들다면, 그것을 보는 안목이라도 바꿔야지요. 그따위 환경 때문에 내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으로 늙어가는 건 정말 최악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