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네가 할 일을 했을 뿐이야.

매일 쓰기 24일차

by Inclass

좀비영화에서 이 대사를 봤어요.

생각보다 이런 대사가 자주 나와요.

대략 이런 흐름이지요.


좀비에게 물리거나, 상처가 생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사람도 좀비로 변하게 되지요. 그리고 좀비를 피해서 살아난 사람들이 있어요. 서로 간에 갈등은 있어도,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라는 특수한 환경은 그들을 서로 단합하게 만들지요. 그렇게 힘든 환경에서 좀비를 피해서 잘 지내다가 정서적으로 유대감이 강한 관계들이 생겨나요. 연인이라던가, 잃어버린 동생을 떠올리며 가까워진 아이들이라던가, 잃어버린 부모 자식의 관계를 느끼게 해 주는 어른과 아이라던가 말이지요. 아무튼, 정서적으로 끈끈한 그런 감정이 생겨나지요. 힘든 환경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행복을 느끼는 시점에서 좀비가 스멀스멀 기어 들어와요. 그리고 그들 중 하나를 공격하지요. 공격당한 사람은 조금씩 좀비로 변해가요. 그렇게 좀비로 변하는 사람과 깊은 정서적 유대가 있었던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 가능성이 있다며 혹시 모른다면서 변해가는 사람을 어떻게든 지켜보려 하지요. 희망은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 좀비로 변하게 돼요. 그리고 좀비가 느끼는 특유의 공격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를 지켜주던 존재에게 덤벼들게 되지요. 자신을 공격하는 좀비. 이성적으로는 머리를 가격해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좋은 감정이 있었던 존재의 얼굴을 한 비이성적 존재를 결국 공격하지 못하지요. 주저하며, 자신의 삶도 그와 같아지려 하는 순간, 누군가가 나와서 무참하게 좀비를 무찌릅니다. 더 이상의 물리적 활동이 불가능한 존재로 말이지요.

공격당하는 이 대신에 좀비를 무찌른 삼자는 좀비와 공격당하는 사람 사이의 정서적 유대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었지요. 좀비를 처단하고, 두려움과 상실감, 슬픔에 침식되어 어떤 반응도 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옵니다. 미안하다고 하지요.

그렇지만, 공격당한 사람의 답변을 듣기도 전에 다른 누군가가 공격당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도움을 주러 가게 됩니다.


좀비의 습격이 끝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시금 자신들의 터전을 지켜갈 벽을 만들게 됩니다.

공사를 하는 분주함 속에서 좀비를 무찌른 사람에게 공격당할 뻔했던 사람이 가서 힘겹게 고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무찌른 사람은 미안함을 표현하지요. 그 말에 공격당했던 사람은 힘겹게 말합니다.

아니, 넌 네가 해야 할 일을 했어.



선거 기간입니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적 성향이 없음도 거짓이지만, 그렇다고 강한 것도 아니라는 것만 먼저 이야기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친한 선생님과 식사를 하는데, 뒷자리에서 정치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어떤 정당을 찍을 것이냐에서 시작된 대화는 언제 누가 어떻고, 그건 가짜고, 이건 진짜고, 아니다 이게 진짜다, 등등의 대화로 이어지기 시작하더군요. 어찌나 뜨거운 대화를 나누던지, 제 목으로 넘어가는 감자탕 보다 뒷자리의 열기가 더 뜨겁게 느껴진 것 같았습니다.

배경음악으로 느끼기에는 생각보다 큰 소음이더군요.


함께 한 선생님과 식사를 하고, 학교에 대한 근황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식당에서 들었던 그들의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설전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다양성이 존재하니까요.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그 집단의 가치에 공감한다고 볼 수 있지요. 어떤 정당을 지지한다고, 지식인이 아니고, 상류층도 아니며, 정당 지지를 바탕으로 남과 여, 늙음과 젊음이 나누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아니어야 합니다. 특정 정당이 가진 가치에 공감하고, 그들의 가치가 조금은 큰 소리를 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지해야 하겠지요.

때문에, 정당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의 균형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 지인들에게 묻지 마세요.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전도하려고 하지도 않으면 좋겠어요.

누가 어떻더라는 말로 선택권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맞는 정당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설득이 아니고, 자신이 알아가는 과정에서 다양성도 함께 살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나와 가까운 그 사람이 나와 다른 정당을 선호한다고 싫어할 필요도 없어요.

그는 그가 해야 할 일을 한 거예요.

모든 사람이 내가 선호하는 정당을 선호한다면, 오히려 독재가 될 수 있어요. 반대로, 모든 사람이 그가 선호하는 정당을 선호한다고 해도 역시나 독재가 될 수 있지요.

나와 네가 다른 선택을 하기 때문에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그가 할 일을 했어요.


*제목 배경에 어떤 색을 넣을까 고민하다가 역시나 정치적 성향으로 오해받을까봐 그냥 비워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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