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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쓰기 25일차

by Inclass

과거 교육 현장에서는 체벌을 쉽게 접할 수 있었어요.

수업을 듣지 않는다고 때리고, 과제를 하지 않았다고 때리고, 졸았다고 때리고, 졸은 것처럼 보였다고 때리고, 떠들었다고 때리고, 떠든 것처럼 보였다고 때리고 말이지요.


그러다 보니 어떤 학생이라도 학교 선생님이라고 하면 무섭게 생각했어요.

때리니까 말이지요.


안타까운 것은, 교사의 체벌 속에 교육적인 목적,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이 아이가 잘 되게 하겠다는 다짐을 가진 교사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한 학생이라는 존재에게 자신의 강함 아닌 강함을 과시하기 위해서, 교사라는 권력을 남용하기 위해서 체벌을 행하는 교사가 많았다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좋은 뜻은 지워지고, 폭력, 무자비함이 가득한 체벌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람들 사이에 부각된 것 같아요.


지금은 체벌을 하지 않지요. 적어도 제가 몸담았던 교육 현장에서는 그랬어요. 물론, 제가 워낙에 좋은 아이들과 좋은 환경에서 수업을 할 수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요.


체벌이 사라지고 교육 현장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체벌 반대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가 있었어요.

일부 학부모님들은 학교에 가서 체벌하지 말라고 시위를 하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학생들도 그랬지요.


사교육에 몸담고 있는 후배에게 연락이 왔었어요. 학교 현장은 어떻냐고 말이지요.


후배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놀라웠어요.

학원에 출근하는 길에 인근 학교에서 무리 지어 체벌 금지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봤었는데, 그날 저녁에 자신의 학원에 등록한 학생의 학부모가 그중에 하나였다는 이야기였지요.

학부모는 후배에게 부탁했다고 하더군요.

"성적 잘 나오게 못하면 때려서라도 지도해 주세요."


사교육을 통해서 아이를 강하게 지도해 달라는 학부모는 왜 학교 앞에서는 체벌금지를 위해서 그렇게 노력했을까요? 자신의 아이보다 타인의 아이를 중요하게 생각했었을까요?




체벌이 사라지고, 학교 현장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공부하지 않는 아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었어요.

수업시간에 듣지 않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 방해하는 아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지요.

교실에서 나가라고 하면, 수업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금지되었어요. 체벌은 방법이 없었고요. 벌점도 있었지만, 그건 벌점이라는 요소를 관여하고 염려하는 아이에게만 적용되는 규정이었지요.


학교 생활기록부라는 방법론이 있었지만, 대학 진학을 생각하는 아이들에게는 먹히는 방법이었지만, 단순히 졸업만을 목표하는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시원한 해결 방법은 아니었어요.


공부할 아이들은 공부했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잘하지 않았지요.

성적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았어요. 부모님께서 아이에게 특별하게 관여하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문제는 경계에 있는 학생들이었어요. 대부분 어려움보다는 쉬움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들이 쉬움을 선택하는 것에 대하여 교사에게는 노력과 열정, 관심 말고는 특별한 방법이 없었지요.


강제적 요소가 사라지면서 자율적 요소가 부각되면서 미래에 대한 방향성과 목표가 뚜렷한 아이들은 그 길을 선택했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불분명한 아이들은 쉬운 길을 선택했어요.


자연스럽게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의 극명함이 나누어지기 시작했어요.


자율성은 필요해요. 그렇지만 그것이 절대적 법칙은 아니지요.

어디서든 절대성은 존재하지 않아요. 결코 그런 공식은 존재하지 않지요.


어떤 집단인가에 따라서 자율성은 독이 될 수도 있지만, 득이 될 수도 있지요.

주도적인 성향이 강한 아이들, 목표가 뚜렷한 아이들을 대상으로는 자율성이 분명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어요. 그냥 둬도 공부하니까요. 그렇지만, 수동적인 성향의 아이들은 끌어줘야 할 필요가 있지요. 어느 정도의 강제성 말이에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는 더욱 강한 강제성이 필요하게 되지요.


스마트폰의 사용 역시 그런 것 같아요.

어떤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자신만의 창작활동을 하고, 언어를 배우고, 학교 교육현장에서 정해둔 교육과정을 넘어서는 학습을 수행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지만 어떤 아이들은 계속해서 게임을 하고, 동영상을 찾아보며 시간을 보내게 되지요.


자율성을 억제하는 게 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니에요. 분명하지요.

자율성으로 인해서 일반적인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들도 있으니까요.


정답은 저도 모르겠어요. 아이의 기질에 따라서 다르고, 어떤 환경에 있는가에 따라서 다르니까 말이지요.

어떤 아이는 자율적인 환경이 좋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강압적인 환경이 좋을 수도 있어요.

하나 확실한 것은 자율성이 절대적 답이라는 것도, 강압성이 절대적 답이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교육, 성장의 과정에서 수학공식 같은 문제 해결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때문에 어른도 계속 공부해야지요. 정답은 없어도 최선의 방법은 있으니까요. 그러니, 내 아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잘 지켜보는 사람이 계속해서 공부하고, 고민한다면 누구보다 빨리 방법을 찾을 것 같아요.


재미난 건, 강압적인 환경, 자율적인 환경이 답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에게 어떤 모습을 자주 보이는가가 더욱 답이 아닐까 생각해요. 책 읽는 부모인지, 공부하는 부모인지, 게임하는 부모인지, 폭언하는 부모인지, 위로와 응원의 말을 하는 부모인지 말이지요.

아이를 위해서 공부하는 부모가 된다면, 아이도 부모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지 않을까요?


자율은 경계를 강하게 만들어요.

자신에게 주어진 자율을 어떻게 화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앞에서 아이는 자신이 주로 보고 학습한 행위를 할 거예요. 그러니, 아이가 자신에게 자율의 시간이 주어진 상황에서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게 하는지 알려주는 방법은 결국, 부모의 역량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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