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26일차
의대에 입학한 A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전학을 왔었지요. 제가 있던 학교에서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는 상위권 아이들에 대한 특별 관리가 있었고, 그 특별관리의 일부가 상위권 학생 중심의 특별 수업 참여와 특별 테스트 참여가 있었어요. 그런데, 전학을 온 A는 그런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이유를 들어보니, 본인의 학습 계획을 수행하기에도 충분히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어요.
학교에서는 일단 그렇게 두라고 하더군요. 1달 뒤의 모의고사에서 특별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과 A의 성적을 비교해 보자는 의도였어요.
1달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A는 당당하게 1등을 했어요.
A의 학습 태도를 관찰해 봤어요.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어요. 학교의 행사나 분위기에 관여하지 않고, 자신의 학습 계획을 작성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했지요. 감기 기운이 있거나, 체육대회가 있었다거나 등등의 변수는 고려되지 않았어요. 자신이 계획한 학습 일정이 완수되는 게 중요했지요.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했어요.
계획 밖의 과제를 위해서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활용했어요. 왜냐면, 자율학습 시간에는 자신의 학습 계획을 수립하는 게 중요했거든요.
A의 질문은 달랐어요. 보통의 아이들이 "선생님 몇 번 문제 모르겠어요."라고 질문하는 반면, A의 경우는 "어떤 문제를 어떤 개념을 적용해서 접근했는데 막혔고, 다른 개념을 적용해서 풀어보니 접근은 되지만 전개 과정이 이상하게 나왔어요. 정답지는 이렇게 나왔는데, 저는 이런 방법으로 생각했어요.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제가 잘 못 접근한 부분이 어디일까요?"와 같이 매우 구체적인 질문을 했지요.
A와 함께하는 수업은 즐거웠어요.
보통,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공부 잘하는 아이의 이름을 먼저 외우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관심 밖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쉽게 이야기해서 그런 거예요. 수업을 하면서 어려운 내용을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눈에 힘이 빠지고 가물가물 잠들기 마련인데 몇몇의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면서 듣는 거지요. 그런 일이 몇 주간 반복이 되면 교사도 사람인지라 그 아이가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름표를 찾아보지요. 그렇게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는데, 재미난 건 그렇게 기억된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경우가 많은 거지요.
A의 경우는 마치 제가 하는 모든 말과 판서등이 그 아이에게 흡수되는 기분이었어요. 마치, 스펀지를 앞에 두고 수업한다고 해야 할까요? 모든 말을 기억하고, 모든 판서를 기억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러다 보니 그 아이 앞에서는 다른 말을 하는 게 너무 미안하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당연히, 수업에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고, 그 학급만 진도가 빠르다 보니 조금 더 심화된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되었지요.
중요한 것은 A는 스스로 학습 계획을 수립하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려 노력했다는 거예요. 수업도 마찬가지지요. 수업시간 개념을 확실하게 해야지 자신의 학습 계획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으니까요. 질문 과정에서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해야지, 모르는 부분만을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으니까요.
왜, 누군가의 문제에 대해서 상담을 하는데 내담자에게 문제 해결을 위해서 어떤 시도를 했냐는 질문에 자신은 별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1번 방법을 이야기하면 그것도 해 봤다, 2번 방법을 이야기하면 그것 역시 해 봤다. 3번 방법을 이야기하면 그것도 해 봤다 하는 경우 있지요? 그런 경우 만약 내담자가 처음부터 자신의 시도와 실폐 사례를 알려주면 조금 쉽게 해결 방법에 도달할 수 있는데, 상담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처럼 아무 말 없이 있다가 서로 간에 시간만 허비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아무튼, A는 그렇게 모든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 노력했어요.
A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주도적인 학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스스로 계획하고, 그것을 수행하려 노력했거든요.
졸업을 하고 A가 학교를 찾아왔었어요. 그리고 지난 학창 시절 이야기를 했지요.
호기롭게 전학 온 첫날부터 특별 수업을 거부했던 기억과, 그럼에도 좋은 성적을 취했던 그때의 기억을 말이지요.
궁금했어요. A처럼 공부하는 아이는 어떻게 그런 방법을 알게 되었을까요?
그래서 물어봤었지요.
사실, 본인도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부모님께서 다이어를 작성하는 방법을 알려줬다고 해요.
부모님도 종종 거실에서, 식탁에서, 방에서 일정을 계획하고, 조절하며 즉흥적으로 시간을 사용하거나 하지 않고, 계획하며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해요. 그리고 본인도 그 모습을 따르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학습 계획을 작성하고, 그것이 완료된 순간의 성취감이 계속 누적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학습 계획을 수립하는 게 조금씩 습관이 되었다고 해요. 완료되면 스스로에게 상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을 완료하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하고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아이의 학습 계획과 관계없이 부모가 즉흥적이었다면, 그래서 아이가 자신이 수립한 계획을 부모의 권위로 인해서 빈번하게 포기해야 했다면, 그래서 그런 성취감의 누적이 없었다면, 그래서 계획은 당연히 성취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면 과연 아이는 계속해서 계획을 수립하고 성취하는 과정을 반복할 수 있었을까요?
많은 부모님이 아이가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해요. 관심과 보살핌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성장시키려 하지요.
그런데 과연 그게 정말 아이를 위한 방법일까요? 과연 올바는 교육이고 성장이라 할 수 있을까요?
같은 집에서 자라는 아이라도 기질의 차이가 있어요. 같은 형제, 자매라고 하더라도 기질의 차이가 있지요.
때문에 자신의 아이라고 해도 부모와 아이의 기질 차이가 존재할 수 있어요.
그걸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아이는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얻고, 성장하고, 성숙하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있지요. 부모는 그 과정에서 혹여 아이가 실수하게 될 경우의 방패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후의 방패지요. 최전선에서 사전에 문제를 막는 존재가 아니라, 아이가 정말 백기를 들고 포기하려 할 때 아이를 지켜주는 마지막 무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