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은가요?

매일 쓰기 27일차

by Inclass

모든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잘 되기를 바랄 거예요.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신이 가진 최고의 것을 해 주려 하겠지요. 문제는, 자신이 가진 최고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고,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가치 역시 저마다 다르다는 게 문제가 되겠지요.


누군가는 아이에게 육체적 건강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아이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하며, 누군가는 아이에게 경제적 자유로움을 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아마, 부모가 살아가면서 깨닫게 된 최고의 것을 아이에게 주려 노력할 거예요.


문제는 생각보다 많은 부모, 어른들이 아이의 성향과 기질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의 관점에서 최고의 것을 주려 한다는 거예요.


사람마다 성향은 달라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라 하더라도 성향은 충분히 다를 수 있어요.

때문에 부모와 아이의 성향도 다를 수 있지요. 무조건 다른 건 아니겠지요. 아무래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상황을 자주 경험하고, 함께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가족이라면 어느 정도 비슷한 성향이 될 가능성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가족 구성원이 각자 살아가면서 그리고 그들이 어떤 환경에 노출되는가에 따라서 저마다 가치관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고, 성향의 차이도 분명 발생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근본적인 기질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요.


하나 더 고려해야 하는 것은, 부모의 시대와 아이들이 살아가는 시대에는 사회적인 가치의 변화도 존재할 수 있어요. 때문에, 부모의 시대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과 가치가 아이의 시대에는 비이성적이며 불합리한 판단이 될 수도 있지요.


때문에, 부모의 관점에서, 어른의 관점에서 아이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관점과 가치를 강요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즉, 변화하는 가치를 존중하고, 가치 기준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거지요.


운동을 좋아하는 부모는 건강이 최고라고 하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육체적 능력이 최고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책을 좋아하고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자녀에게는 비논리적이고 힘쓰기 좋아하는 부모의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경제적 수익 창출을 위해서 무조건적인 열심과 아끼는 삶의 방식이 다음 세대에게는 지금을 즐기지 못하는 아둔함으로 보일 수도 있고요.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지금을 즐기는 삶의 방식을 보면서 누군가는 대책 없는 삶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젊은 시절 많은 경험과 깨달음이 더 귀한 가치로 다가갈 수도 있지요.


이처럼 가치는 모두가 달라요. 누군가는 부모가 최고로 생각하는 가치에 공감하지만, 누군가는 그 가치에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까요?


여전히, 부모가 보는 가치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우리 아이에게 부모의 가치를 강요해야 할까요? 만약에, 내가 절실하게 믿었던 그 가치가 만약 틀렸다면 어떻게 하지요? 그리고 만약, 내가 생각하는 그 가치를 아이에게 온전하게 전달했다고 하더라도, 그 가치를 이어받아서 살아가는 아이가 남은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그 가치를 강요할 건가요?


만약에 말이에요.

엄청난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부모가 말이지요. 그런 환경을 얻게 되니 삶이 이전과 다른 것을 알게 되었어요. 시간과 물질에서 자유를 얻었지요. 경제적 가치의 자유를 얻은 부모가 아이에게 경제적 가치의 자유를 전달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안타깝게도 부모는 시련과 고난 이후에, 노력과 인내 이후에 자유를 얻었기에 그것이 소중한 것을 알게 되겠지만, 가치가 성립되는 시점부터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시작한 아이는 그것이 귀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어요. 어쩌면, 정말 어쩌면 오히려 그것을 더욱 가볍게 여길수도 있지요. 가볍게 여긴다는 말은 쉽게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만약에 말이에요.

정신적 가치에 비중을 두는 삶을 추구하는 부모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비록 소유하지 않았어도 이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지요. 부모는 아이에게 정신적 행복이 갖는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아이는 그것에 공감하지 못하는 거예요. 어린 시절에는 그것의 가치를 수용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소유한 사람이 누리는 행복을 목격하고, 자신이 소유하지 못하기에 얻는 어려움을 인식하게 되지요. 어쩌면 아이는 부모가 최고라고 생각한 가치를 세상에서 패배한 사람의 정신승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부모는 정신적으로 피폐한 삶을 살아가는 것의 고통을 이겨내고, 소유가 가지고 오는 갈등의 원인을 알았기에 소유하지 않음에서 오는 기쁨을 얻게 되었지만, 선택권이 없었던 아이에게는 부모가 소중하다고 느끼는 가치에 공감하기 힘들게 되는 거지요.


정답을 말하려는 건 아니에요. 아니요. 정답이 있을까요?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부모의 성향이 다양하고, 아이의 성향이 다양하니까요.


단, 저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결국, 부모와 자식, 우리 모두 각자가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것 아닐까요?

그 본질을 기억하자고 말하는 거예요.


아이가 학교에서 성적이 좋지 않아요. 그럼에도 시험기간에 공부를 하지 않지요. 당연히 부모는 화를 낼 거예요. 너는 내일이 시험인데 뭐 하는 거야?부터 시작해서. 성적표를 보면서 학교에서 뭐 하는데 성적이 이러 하냐? 등등 말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화내는 감정의 중심에는 뭐가 있을까요?

우리 아이가 또래들 사이에서 뒤처지는 것 아닐까? 우리 아이가 귀한 삶의 순간순간을 너무 하찮게 살아가는 것 아닐까?

결국 부모의 눈에 보이는 부족함들이 성인이 된 우리 아이가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닐까?


부모는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분명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성장하면서 보이는 부족함들에 조바심내고, 염려하고 걱정하게 되지요. 그런 불안감이 아이에게 윽박지름으로 표현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말이지요.

과연 학교에서 공부를 잘한다고, 학교생활을 잘한다고, 교우관계가 좋다고, 체력이 좋다고 아이들이 성공하는 삶을 산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주위를 살펴보면 그런 것도 아니에요.

운이 좋아서 잘 사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지만 그저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요.


아이가 잘 되기를 바란다면, 먼저 부모의 기준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잘 되기를 바라나요? 그리고 그런 부모의 가치가 아이의 의사를 반영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만약, 아이의 성향이 고려되고 부모의 가치와 협의점을 만들어서 형성된 아이의 목표가 비록 부모의 관점에서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아이가 행복하다면, 그 목표가 비록 평범하다 하더라도 그걸로 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으세요?

남들의 이야기를 듣지 마세요. 남들의 기준으로 내 아이를 평가하지도 마시고요.

내 아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 아이의 성향에 집중하세요.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아이와 소통하세요.

아이와의 소통을 바탕으로 부모인 내가 아이에게 어떤 기준이 행복을 바라는지, 어떤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지 깊이 생각해 보세요. 그런 고민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고 아이도 그것에 공감한다면, 분명 행복한 아이로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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