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일, 새해다.
나는 12월 31일이 ‘해피 뉴 이어’를 해야 하는 날이라는 것도 잊은 채
사촌언니와 두 시간 넘게 쓸데없는, 그래서 더 좋았던 일상 이야기를 나누고
강의를 듣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새벽 다섯 시쯤 눈이 떠졌다.
딱히 이유도 없는 불안, 필요 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망상처럼 부풀어 오르는 생각 속에서 정신을 놓고 있을 때쯤
작은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해 떡국 먹으러 갈래?”
그 한마디에 나는 집을 나섰다.
근처 전망대에서 새해 떡국 행사가 열린다는 말에
일출도 볼 겸 군에서 마련해 준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춥고, 잠결이어서였을까.
떡국 한 그릇을 다 먹지 못하고 몇 숟갈만 뜬 채
남은 건 작은 오빠에게 넘겼다.
그리고 한쪽에 널려 있던 새끼줄 앞에 섰다.
새해 소원을 적어 꽂는 자리였다.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 바람에 내 안에 쌓여 있던 불안도 함께 흩어지는 것 같았다.
만약 검고 깊은 어둠이 아니라
환한 대낮이었다면
차마 적지 못했을, 조금은 양심 없는 소원을
나는 그 새끼줄에 꽂았다.
너무 부끄러워 사진도 찍지 못하고
조용히 오빠 옆으로 돌아왔다.
오빠는 떡국 두 그릇을 말끔히 비우고는
이제 집에 가자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일찍 나왔는데 일출은 봐야 하지 않아?”
오빠는 짧게 대답했다.
“일출은 매일 볼 수 있지만, 새해 떡국은 일 년에 한 번이야.”
그 말에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래, 새해 떡국은 일 년에 한 번이다.
올해 양띠 운이 바닥을 친다느니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느니
듣기 거북한 말들이 따라붙는다.
도대체 언제쯤 좋아지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졸업과 동시에 98년 IMF를 맞았다.
대학 대신 취직을 했고, 돈을 모아 뒤늦게 대학에 들어갔다.
장학금이 귀하던 시절, 성적장학금 말고는 선택지도 없던 때였다.
부모님께 기대지 못해
알바를 하며 학교를 다녔고
학비는 대출로, 졸업 후엔 그 대출을 갚으며 살아왔다.
그래도 나는
그 시간을, 그 시절을
꽤 잘 버텨왔다.
그래도 괜찮다.
운이 제때 오지 않아도
우리는 늘 조금 늦게, 조금 어렵게
결국은 해내는 쪽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버텨서 여기까지 와본 사람들이니까.
그러니 말이다.
79년생 양띠들,
올해가 아니라면 다음이고
지금이 아니라면 결국엔 우리 차례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잘 살아남자.
그게 이미 충분히
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