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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만총총 Nov 10. 2020

설거지가 싫은 엄마

엄마가 되기 전 나는, 가스레인지 청소가 싫어 끓여 먹는 라면 대신 컵라면을 선호했었다. 어쩌다 봉지라면을 먹고 난 다음 설거지를 하고 가스레인지를 박박박 닦으면 후회했었다.


'치킨이나 시켜 먹을 걸'


그런 내가 변하기 시작한 건 결혼한 후 아이를 낳고부터다. 이유식이 시작이다. 야채를 칼로 다지고 볶고 사각틀 안에 넣어 냉동실에 꽁꽁 얼려 놓고 부지런히 음식 준비를 했다.


좋은 것만 먹이고 싶어서


그렇게 며칠하고 나면 심통이 났다. 아들은 생각만큼 많이 충분히 먹지 않았다.

인상을 쓰며 숟가락을 들고 아이 입에 갖다 대면 아이는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획 돌렸다.

내 마음도 망가진다.

그렇게도 싫은 요리를 아이를 위해 만들었건만 아들은 그런 내 수고스러움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이가 커가면서 조금씩 요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아진다. 그리고 가스레인지도 매일 수시로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음식은 내가 맛있게 먹을 수 있고 어쩌다 아이도 즐겁게 먹으면 기분이 좋지만 쌓여 있는 설거지는 그렇지 못하다. 하루 한 끼 정성을 들여서 새로운 국을 끓이고 반찬을 한 두 가지 차리다 보면 어느새 설거지는 산만큼 쌓여 있다.


그러면 나는 나의 최애 노동요 거북이의 비행기를 들으면서 흥얼거린다.


아들은 여전히 밥을 잘 먹지 않지만 나는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한다. 엄마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핸드폰으로 크게 틀어 놓은 노래를 6살 아들은 후렴구만 완벽하게 따라 부른다.


엄마는 파란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가고 싶었던  그때를 기억하며 흥얼거리고, 아들은 비행기라는 단어가 좋아 따라 부른다. 마흔이 넘은 엄마와 6살 아들은 한 곡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며 동상이몽이다.


날 괴롭히는 것이 날 철들게 한다는 말이 있다. 설거지가 살림이 육아가 그렇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많이 힘들었지만 아이도 이제 어느덧 어린이가 되고 나서 조금씩 편해졌다. 그렇게 나는 살림이  는다. 그리고 조금씩 철든 엄마가 되기도 한다.


괴롭히는 것들을 조금씩 견딜 수 있는 힘을 기른다.  


비행기 노래를 들을 때면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틀맨은 아직까지도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공감하는 사람이 있는 걸 알까 싶다. 그가 죽고 난 12년이 지난 2020년, 아무것도 모르는 6살 어린이도 그의 비행기 노래를 좋아한다.


사람에게는 자신이 죽는 날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하루하루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사랑하며 살아야 한단다. 어렵지만 내 아들에게만큼은 매일매일 사랑을 실천해주고 싶다.


아마 터틀맨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 같다. 그렇기에 그가 죽고 난 다음에도 이렇게 좋은 노래와 가사를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터틀맨도 설거지가 싫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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