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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만총총 Sep 17. 2020

가을에는 전어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다 밤바람이 제법 차갑다 그리고 일상처럼 되뇌는 말이 있다 가을에는 전어.

올해는 전어를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코로나로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장사할 여건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래도 티브이에서는 시끌벅적이다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전어를 한입 입에 물고 눈을 찔끔 감으면서 엄지 척을 날린다. 전어가 시작인지 가을이 시작인지 그 계절이 돌아왔다.


전어의 사전적 의미는 철갑상어과의 바닷물고기. 칼 상어와 비슷한데 몸의 길이는 1.5미터 정도이며, 등은 잿빛을 띤 청색이고 배는 흰색이다. 주둥이가 뾰족하게 나왔다.  - 네이버 사전


전어 맛이 좋다는데 과연 진짜 맛이 좋은 건가, 티브이를 보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아쉽게도 전어 생선구이를 보는데도 침이 꼴깍꼴깍 삼켜지지는 않는다. 유독 생선을 구워 먹는 것보단 날것, 회로 먹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가을에는 전어라는 말이 한해 두 해를 거쳐 지속적으로  티브이에 노출이 된다는 건 진짜 맛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꼭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2004년 가을, 역시나 실패 방구석에 박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엎치락 덮치락 하며 전어가 나오는 티브이를 시청하고 있었다. 사촌언니가 오랜만에 찾아왔었다. 형부랑 데이트하면서 방구석에 티브이만 보고 있을 사촌동생이 짠해서 밥이라도 챙겨주려고 고맙게도 지하 단칸방에 놀러 왔다. 사촌언니는 뭐 먹을래, 하며 내게 물었고, 나는 머릿속을 거치지 않고 외쳤다.

"전어"

우리는 셋이서 근처 식당을 찾았다. 그때 형부도 학생 신분이라서 큰돈은 없었다. 단지 늘 굶고 있는 여자 친구를 먹이려고 꼽사리로 사촌동생을 깍두기처럼 끼워주었다. 가을에는 전어라는데 구이와 회는 생각보다 비쌌다. 전어 맛이 좋아 사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어()라고 한다는데 과연 그럴지 기대 반 설 레반으로 형부의 눈치를 보며 구이와 회를 시켰다. 형부도 후회하지 않겠지, 다행히 나는 실연의 실패를 맛보는 중이어서 가여운 존재로 비쳐져 그나마 나았다.


주문만으로도 정말 행복했었다. 주머니 속이 빠듯하다 못해 텅텅 비어있을 때는 누가 사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 나는 설레설레 하며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지런히 준비해 드렸다. 사실 형부와 언니는 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자비로운 선택이다. 굶고 있는 사촌 동생에게 적선을 한 셈이다. 나는 가을에는 전어라는 말이 있지 않냐, 라며 은근슬쩍 형부와 언니에게 전어에 대해 열심히 홍보했다. 평생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을 나는 찬양하고 있다 사랑에 실패한 것을 변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식당 주인처럼 이런 말 저런 말 되지도 않는 말을 섞어 가며 말을 쉬지 않았었다.


형부는 마지못해 그래 한 번 먹어보자, 라며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나름의 열변이 통한 건지 그만 말을 하라는 건지 내 입을 막기 위한 필요 선택을 한 것이다. 드디어 전어회와 구이가 상위에 얹어졌다. 생각보다 상은 허술했다. 딸랑 전어구이와 전어회 그리고 양념장 몇 가지 되지도 않는 반찬이 나왔다. 실망이었지만 꾹 참고 나는 얼렁 젓가락을 들어 전어 구이를 냉큼 접시에 가져와 배를 갈랐다.


허허 참, 가시는 왜 이렇게 많은 것인지 살을 어렵사리 바르고 한입 먹었다. 언니와 형부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이 맛 진짜야 이거 맛있는 거 맞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갖은 야유가 섞인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못 본 척할 수 없어 이런 맛인가 봐 맛있네,라고 되지도 않는 말을 했다 도대체 가을에는 왜 전어지?


식당 주인은 테이블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전어는 통째로 먹어야 맛이 난다며 먹을 줄 모르는 우리 테이블에 훈수를 두었다.


나는 전어구이를 통째로 들어 한입 배어 물었다. 역시 생선 맛이다 구이는 실패다 전어회 한 접을 들어 초장에 찍어 먹었다. 살코기는 별로 없고 뼈째 먹는 전어, 초장 맛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 생선과 초장의 조합.


나는 주위에 엄숙한 분위기를 깨고 엄지 척을 날렸다 사촌언니는 한심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 나를 보고 불쌍한 사촌동생이 가엽다는 듯이 그래 그나마 회는 낫네, 라며 많이 먹으라고 젓가락을 테이블위에 놓았다.  형부는 밥을 시켜 허기진 배를 맨밥으로 달랬었다.


'옛날 한 며느리가 시집살이가 하도 힘들어서 집을 나갔다가 시어머니의 전어 굽는 냄새에 못 이겨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전어 맛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라는 설도 있다. 아무래도 나는 전어 맛을 모르니 집 나간 며느리를 못 찾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힘들어서 이별을 택했던 그도 다시 돌아오기 힘들겠다. 난 전어를 굽지도 않을 것이고 흩날리는 낙엽만 바라보고 있겠지.


 바람 불어 쓸쓸한 10월,  영양분이 듬뿍 든 제철 생선 전어를 먹으며 가을을 즐기는 건가 아니면 지금 이 계절의 느낌을 먹는 것일까?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은 또다시 찾아왔다. 지금 형부는 전어구이를 좋아하고 나는 전어회가 좋다. 티브이는 가을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전어 얘기에 한창이다. 이 계절, 난 성시경의 목소리로 가을 그리고 이별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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