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만총총 Nov 09. 2017

야채볶음

집을 옮겼다. 호주 한국일보에 직장을 잡고 이스트우드로 이사를 왔다. 이곳은 한국인과 중국인 그리고 호주 사람들이 뒤섞여 사는 곳이다. 한국 언론사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호주에서는 학생비자를 얻으면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 '호주 나라'를 통해 일자리를 얻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해왔던 '편집디자인' 자리를 구했다. 영어도 부족하고 영주권도 없는 상태에서 번번한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데 아주 특별한 행운이 한몫한 것 같다. 시드니와 이스트우드까지 열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교통비를 생각해 이스트우드로 거처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불법 셰어를 들어 가려  했으나 매주 내는 방세가 적은 반면,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결국 나는 신문사와 가장 가까운 중국인 셰어 집을 선택했다. 

이곳은 젊은 주인집 아저씨와 그의 딸, 그리고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인상이 좋았다. 특별한 말도 없는 인사에 인자한 미소로 답해주셨다. 주인집 주방은 모든 물품들이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반질반질 윤이 났다. 다만, 할머니라 그런지 선반에 널어 놓은 행주는 더러웠고 구멍이 송송 나 있었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와 다를 바가 없었다. 눈이 침침한 할머니는 늘 쓸고 닦고 하는데도 바닥에는 먼지가 조금씩 보였고 행주는 그렇게 구멍이 송송 나 있거나 더러웠다. 사촌 언니는 우리 집이 더럽다고 밥을 먹기 싫다고도 했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렸다.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반찬을 잘 먹지 않았다. 더럽다기보다는  맛이 없었다. 그때는 나물 반찬이 싫었다. 햄과 라면이 더 좋았다. 
나는 가끔 아프다고 학교를 안 갔다. 그러면 할머니는 손녀의 꾀병을 알면서도 모른 척 광(광(shed)은 잡다한 물건들을 쌓아놓는 작은 단칸 구조물이다.)에 숨겨놓은 꿀단지를 꺼내와서 한 숟갈을 내 입에 넣어 줬다. 그러면 아픈 몸은 씻은 듯이 나았다. 꾀병을 한참 부리던 나이였다. 우리 할머니는 등이 굽었고 눈이 침침했고 긴 머리를 꽁꽁 묶어 비녀를 꼽고 계셨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했었다. 중국인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처럼 등이 굽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늘 뒷짐을 지고 이곳 저곳 살피며 나무랐다. 

주말 동안 감기 몸살로 집에 종일 누워 있었다. 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주인인가 싶어 문을 열었다. 할머니가 흰 접시에 녹색 채소 볶음을 건네주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배도 고프기도 했지만 이런 특별한 선물을 주실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 영어로 '감사합니다'를 연신 내뱉으며 감격스레 접시를 받았다. 양파도 파도 깨도 없는 오로지 녹색 채소와 오묘한 소스의 볶음 반찬이었다. '뭐지' 감격스럽게 받았지만 녹색 재료의 맛에 의심을 품었다. 한국 나물과 전혀 다른 아무것도 들어가 있지 않은 오직 숨이 죽어 있는 잎과 줄기 덩어리들이 뭉쳐서 접시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할머니의 정성이 감격스러워 한 젓가락을 입에 넣었다. 진짜 완벽한 맛에 눈물이 핑 돌았다. 밥에 같이 먹을 정신도 없이 그 자리에서 뚝딱 해치워 버렸다. 순간 꾀병인듯한 감기가 싹 나으며, 몸이 개운해짐을 느꼈다. 할머니의 손길은 국가와 다름을 초월하는 것 같다. 할머니의 약손인 손맛의 정체 녹색 야채는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 다만, 그녀와 함께 했던 그 시간이 너무 그립고 그립다. 





작가의 이전글 5살 꼬마에게 당하는 인종차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