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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만총총 Nov 10. 2021

궁색한 김밥

초등학교 운동회 때 남들은 김밥을 싸 오는데 엄마는 맨밥을 싸오셨다. 말을 못 하는 엄마는 김밥을 쌀 줄 모르셨던 것 같다. 매일 새벽에 호미와 바구니를 들고 농사하러 나가 저녁에 들어오셨던 엄마는 어디 가서 김밥 싸는 방법을 배울 줄도 몰랐고 작은 시골 마을에서 엄마에게 알려줄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농사일로 바쁘신데 운동회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온 엄마가 고마웠다. 초등학교 첫 운동회 때 엄마는 농사일이 바쁘셔서 오지 않으셨다. 어린 마음에 속상했지만 딱히 울진 않았다. 그려려니 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는 말을 못 하고 내가 지켜줘야 할 분이시니까'


다음 해에는 엄마가 운동회에 참석하셨다. 다른 친구들 도시락통에는 김밥이랑 과자 음료수 가득인데 우리 엄마 도시락 통에는 맨밥에 김치뿐이었다. 조금은 속상했지만 운동회에 같이 있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바쁜 농사일을 제처 두고 엄마의 자리를 채워주니 맛없는 김치도 배고프지 않을 만큼만 먹었다. 제사상에는 생선을 많이 올릴 수 있었던 우리 집은 그렇게 지독하게 가난하진 않았지만 잘 살진 않았다. 음료수를 살 줄 몰랐지 못 살 형편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친구들이 부모님을 운동회에 초대하지 않았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엄마는 오고 싶어 했지만, 나는 기어이 엄마를 말렸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운동회에 오는 것이 마냥 좋았는데 이제는 엄마가 오지 안 왔으면 했었다. 말 못 하는 엄마가 부끄럽다기보다는 사춘기의 치기였다. 조그만 동네에서 엄마가 장애인이라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올라가서 소풍에 맨밥을 싸가던 나는 처음으로 김밥을 싸기로 했다. 슈퍼에 가서 햄과 단무지 그리고 계란을 샀었다. 소풍날 당일 새벽에 일어나 밥을 해놓고 밭으로 나가신 엄마를 대신해 김밥을 쌌었다. 재래식 부엌으로 소풍에 들뜬 친구가 찾아왔었다.


"너 뭐해?"


"김밥 싸?"


"김밥을 왜 네가 싸?"


"엄마가 바쁘셔서"


재래식 부엌에 신발을 신고 쪼그리고 앉아 김밥을 새벽부터 일어나 씩씩하게 싸서 도시락통에 담아 중학교 2학년 소풍을 갔다. 김밥김이 따로 있는 줄 몰랐던 나는 집에 있는 돌김에 싸는 바람에 점심때가 되고 나서 김밥은 흐물럭 거렸다. 나는 차마 김밥 통을 열지 못하고 뚜껑을 닫았다. 이쁘게 잘 싼 친구들 김밥에 비해 내가 싼 김밥이 너무 초라해 정성스레 싼 김밥 대신해 컵라면을 먹었다.


'집에 가서 먹으면 되지'


소풍이 끝날 무렵 내 도시락통은 텅 비어 있었다. 같은 반 남자애와 여자애들끼리 김밥을 다 먹어 버렸다.


"김밥 맛있더라"


나는 그 친구들이 얄미웠지만 맛있었다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을 싸지 않고 소풍과 운동회 때에는 컵라면과 과자를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소풍에는 김밥이라는 단어가 마음 한편에는 어색하다.


엄마는 나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시진 못했지만, 부족하지 않게 사랑하고 아껴 주셨다. 나의 꾀병에 할머니는 쪼끄만 게 꾀병 부린다며 혀를 끌끌 차셨지만 엄마는 나를 꼭 안고 머리를 어루만지며 정성스레 간호해 주셨다. 그때 엄마의 무한한 사랑은 넉넉하지 못했던 살림과 궁색했던 옷차림을 버티게 해 준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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