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알못'이 '예찬론자'가 되기까지

아프니까 깨닫게 된 나의 오해와 오만이여, 안녕

by 빛들때

고백하자면, 한 때 건강을 너무 챙기는 어른들을 보며 좀 추하다는 생각까지 하던 때가 있었다. (욕 먹을까봐 미리 말하자면 지금 난 건강에 더 유난이고 진심이다.) 구차하게 느껴졌달까, 살짝 탐욕스러워보이고 저렇게까지 오래 살고 싶을까였던 거 같다. 대단히 큰 오해였고 오만이지 않을 수 없다.


나의 가장 큰 오해는 사람들이 '오래오래' 살고 싶어서 운동이며 건강에 열을 낸단 것이었고, 나의 가장 큰 오만은 '나는 아프지 않고 평생 건강할 것'이라 착각했단 것이리라.


그랬던 지금의 나는, 누구보다 '운동 예찬론자'가 되어 있다. 운동의 'ㅇ'자도 몰랐던, 말 그대로 '운알못'인 내가 말이다. 오죽하면 오랜 지인들이 나를 보고, '네가 술을 끊었다고?', '운동을 한다고?'라며 놀라움과 경탄을 금치 못하겠는가.


이런 변화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겨울, 고통 속에 잠이 깨 고통 끝에 겨우 잠들었던 그 새벽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2월 19일. 숫자와 기억력에 젬병인 내가 정확한 날짜까지 기억할 정도이니, 그만큼 강한 경험이었단 것) 그 해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해로, 당시의 난 홀가분한 마음으로 연말 송년회를 부지런히 다니며 맘껏 먹고 마셔댔다.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몇년간 누적되어온 긴장과 피로감에 대한 보상심리도 있었겠다 싶다.


그러던 중 드디어 그 날이 온 거다. 속이 내내 불편해 일찌감치 진통제를 먹고 잠을 청했던 날, 새벽녘 나는 배가 터질 듯 부풀어오르고 쥐어짜듯 콕콕 찔러오는 아픔에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러다 죽는 거 아냐?' 싶게 고통스러웠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힘들었다. 남편을 깨워 등 좀 쓸어달라 하곤, 그 극한의 고통과 불안이 어느 정도 잦아들기까지 기다리는 것밖엔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던 그 때.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은 딱 하나였다. '아, 이제 술 끊고 운동해야겠다.'


돌아보면 그 때가 만으로 39살 끄트머리. 마흔을 며칠 앞둔 날이었으니, 앞서 말한대로 일과 학업 병행의 압박도 있었겠지만, 소위 '마흔앓이'라고나 할까. 그 때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나의 생활 습관들이 뭉쳐뭉쳐 한꺼번에 대란을 일으키며, 이제 그만 내 삶을 다른 방향으로 틀어보라고 아우성친 게 아니었나 싶다. 그러고 보면 온통 연관된 징조들의 투성이었다. 맥주 한잔에도 심했던 숙취, 뭘 먹어도 소화가 안되고 만성 변비에 시달렸던 뱃속, 늘 피곤하고 체력이 뚝뚝 떨어져 기진맥진하던 낮 시간들...


그렇게 시작되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의 금주+운동 역사가. 살살 변비에 좋다는 요가동작을 매일 1개씩,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2개씩... 조금씩 늘려 1분이었던 운동 시간이 10분이 되고 이제는 제법 30분 가량의 요가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런데 이게 묘했다. 처음엔 -조금 과장하자면- 살려고 했던 것인데, 하면 할수록 예상치 못한 매력과 쾌감이랄까. 그런 게 생겨나니 점점 운동이 재밌어졌다. 우선 변비가 사라지는 즉효가 신기했고, 워낙에 뻣뻣한 나무토막 같았던 몸뚱아리로 안 됐던 요가 동작이 어제보단 조금 되는 게 뿌듯했다. 급할 것도 없고 남과의 비교도 없이, 그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만을 두고, 됐다 안됐다 해도 크게 한 달을 놓고 보면 좀더 나아진 나를 발견하는 기쁨이랄까. 그러면서 자연스레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집 나갔던 체력이.


이렇게 쓰고 보니 굉장히 빠른 변화같다. 하지만 웬걸. 이렇게 되기까지는 사실 한 3년 걸린 듯 싶다. 그렇다고 내가 그럼 어디가 아주 심각하게 많이 아픈 병에 걸렸던가? 그것도 아니다. 그 새벽녘 이후 찾아간 병원에서 내려진 진단명은 어떻게 보면 시시(?)하달 수도 있을 '장염'이었으니, 요란하게 쓴 게 살짝 민망할 정도이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난 그 놈의 '장염'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니 어쩌겠는가. 이후로도 수시로 앓았고 한두달 새 몸무게는 3키로, 5키로 쭉쭉 빠져갔다. 하물며 뭘 먹어도 소화가 잘 안되고 자주 아파 먹는 거 자체가 겁이 날 정도인 날도 많았으니, 먹는 낙이 큰 나로썬 참 고역이었다.


게다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못하는 날들이 잦아 그것이 너무 속상했다. 좋아하는 책 읽기도, 영화 보기도, 가까운 지인들과 만나 맛있는 것 먹고 사는 얘기 나누는 소소한 즐거움도. 속병과 저질체력 앞에서 안 되거나 미뤄지기 일쑤였다. 자주 아프니 애꿎은 남편에게도, 강아지 단지에게도 짜증이 불쑥불쑥 삐져나왔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나 자신이 싫어지고 울적한 기분에 생각도 배배 꼬여, 괜스레 주변 사람과 세상을 향해 그 뾰족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 날들로부터 아프게 나는 깨달은 거다. '아... 운동이란 게 천년만년 오래 살려는 '탐욕'에서 하는 게 아니라, 오늘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으려는 '자존'을 위해 하는 거구나.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옆 '사람들'에게 폐끼치지 않기 위해 하는 거구나' 그렇게 나는 '운동 예찬론자'가 된 거다.


이리 쓰면 엄청난 근육질이거나 균형잡혀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을 거 같지만, 아쉽게도 그건 전혀 아니고(^^;). 가능한 이틀에 한번 꼴로는 요가나 걷기라도 꼭 하는 습관이 들었달까? 또 누가 어디가 어떤 이유에서 아프다 하면(몸이든 마음이든, 가족과의 갈등때문이든 동료와의 관계때문이든), 그 이야기 끝 언저리에는 넌지시 운동을 진심으로 권하게 된 정도랄까?


그러면서 어슴프레 이해도 더 하게 된거다. 그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손주 곁에 있음 초등학생, 대학생, 아니 결혼까지 하는 거 왜 안 보고싶을까. 내가 천수를 누리고 싶어서가 아니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살아가는 그 소중한 모습을 오래두고 왜 안 보고싶을까. 그러니 그 시절 탐욕이라 오해했던 나의 어리석음이여, 뭘 몰라도 한참 몰랐지, 쯧쯧.



단지야, 그러니 가자. 오늘도 아침 산책, 저녁 산책. 아니 오늘은 까짓 밤 산책까지 가자꾸나. 너도 나도 건강하게 어제보다 조금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 더 눈과 맘에 오래도록 품기 위해.



산책은 너의 기쁨이자 나의 기쁨이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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