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와 필라테스 그 사이에서

다른 이의 도움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by 빛들때

야생이 아니고서야 인간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강아지란, 사실 제 힘으론 할 수 있는 게 그다지 많지 않은 존재다. 지능도 2~3세 수준이지만 생활 전반도 2~3세 수준의 아이와 같아 매사 사람 손이 안 가는 데가 없기 때문이다. 밥그릇이 비어 있으면 채워 놓아야 하고 물그릇도 마찬가지다. 산책 갈 땐 목줄을 해줘야 하고 다녀와선 씻겨야 한다. 똥 싼 궁둥이도 꼼꼼하게 닦아줘야 하고 다른 데 쉬 못 하게 배변 패드를 꼬박꼬박 교체해줘야 한다.



그러니 그 녀석이 산책 길에 갑자기 우뚝 서설랑은, 빤히 나를 쳐다볼 땐 분명 용건이 있으신(!) 거다. "어이, 인간! 어서 와 나를 도우라고!" 그 눈빛과 태도가 너무 당당해 "네이~ 개님이시여, 당장 가겠나이다"로 냉큼 가보면 궁둥이 어느 언저리에 살짝 흘린 똥이 묻어 있거나 찰싹 붙어 잘 떼내 지지 않는 작은 나뭇가지가 붙어있거나 한다. 이 닦거나 살살 떼 드리면 그제야 만족스럽게 몸을 시원하게 털곤, 도도하게 뒤도 안 돌아보고 총총 제 길을 간다.



그러니까 그 녀석은 아주 자연스럽고 당당하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당신이 날 도우라고. 소위 '도움 추구 행동(help-seeking behavor)'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취약한 상황에서 이를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는 행동- 줄 아는 거다.



반면 나는, 아니 우리 인간들은 도움 추구 행동을 잘 못 하는 것 같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체로는 타인을 많이 의식하면서 그리 하면 내가 약한 존재로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탓이다. 연구 결과를 살펴봐도 수직적 집단주의 경향이 높을수록, 자기 은폐 성향이 높을수록 도움 추구 행동을 잘 못 하는 경향이 있다(김주미, 유성경, 2010).



그러나 제 때, 적절한 도움을 받는 것은 삶의 굽이굽이에서 우리를 안전히 지켜주고 다음으로 넘어가게 하는 데 너무 중요하다. 홈트로 혼자 꼼지락 가를 3년 남짓 한 나는, 몇 달 전부터 큰맘 먹고 1:1 필라테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요샛말로 '필린이'인 셈인데, 아직 내 수준에서 필라테스는 힘든 요가로 정의된다. (* 요가를 폄하하는 게 아니다. 목적이 다르달까, 아마 내가 평생 어떤 운동을 한다면 그건 요가일 거라 생각할 정도로 난 요가를 좋아한다)



어쨌든 혼자 -이것도 물론 홈트 영상의 도움으로- 요가매트 위에서 몸의 근육을 이완시키고 수축시키던 걸, 젠 리포머나 바렐 등의 기구와 선생님의 르침을 받아 더 길게 이완시키고 더 강하게 수축시킨다. 그러다 보면 '이게 가능하다고?'의 동작도 어느 순간 하고 있고, '아, 이렇게 해야 되는 거였구나' 하며 유사한 동작은 집에서 혼자 요가할 때도 적용시켜 보려 애쓴다. 그렇게 난, 요가와 필라테스 사이에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 느낌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근래 뒷 허벅지가 더 단단해지고 체력이 더 좋아진 것 같다. 그래서 입맛이 돌고 살은 더 찌.. 읭?! 끄응. 여기까지.



그때 필라테스를 시작한 건 당시 혼자 하는 요가가 영 재미없고 통 나아지는 것 같지 않던 내게 운동을 지속하게 해 준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고 자평한다. 그때, 적절한 배움과 도움이 없었다면 난 어쩜, '아... 운동은 해야 되는데...'라고 계속 입 운동만 하며 방바닥에 붙어있을 수도 있었을 게다. 지 않는 자세로 허리 통증만 더 키우고 있었을 수도 있다.



제 때, 적절한 도움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제자리걸음에 답답할 때, 되려 뒤로 가는 것 같아 조바심 날 때, 주위에 도움을 구해보자. 도움 추구 행동에 자연스럽고 당당한 내 강아지 단지처럼, 조금은 뻔뻔해도 좋다.



"인간아, 공놀이가 하고 싶으니 그 공을 어서 내게 던져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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