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를 잦은 속앓이로 시작하여 '아,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마흔 앓이 인가?' 싶게 몇 년간 고생을 하다 이제 좀 괜찮아지나 싶더니, 작년에 불쑥 찾아와 날 괴롭힌 게 있었으니 그건 다름 아닌 '이석증'. 여느 때처럼 기상 시간에 맞춰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세상이 휙! 돌아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던 첫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느낀 그 공포감이란.
내가 겪은 그대로 이석증은, '주변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심한 어지럼이 수초에서 1분 정도 지속되다가 저절로 좋아지는 일이 반복되는 증상'(다음 백과사전)이다. 이 이석증이란 게 고약한 점이 있는데 첫째 겉으로는 멀쩡해 보인다는 것이요, 둘째 재발이 잦다는 것이요, 셋째는 딱히 이렇다 할 원인도, 치료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상상해보시라. 외견상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누군가가 저 혼자 묘하게 기분 나쁜 멀미와 같은 증상을 느끼면서 언제 어떻게 또 세상이 휙 돌까 무서워 잔뜩 위축되어 지내는 모습을.
물론 대표적인 치료법으로 '이석 치환술'이란 게 있긴 하는 거 같다. 원래 귓속 깊은 곳에 있어야 할 이석이란 놈이 다른 데 흘러 다니며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것이니, 고개의 위치를 바꿔가며 이 놈을 다시 제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증상이 있을 때 이비인후과를 가면 의사가 대체로 이 치환술을 해준다. 그럼 도로 멀쩡해져(겉으로는. 속으론 멀미의 여진으로 계속 편치 않고 기분이 나쁘다) 귀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제는? 앞서도 말했듯 이게 또 불쑥 재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딱히 그걸 막을 만한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스트레스 관리, 고개 젖힘 같은 자세 주의, 비타민D 섭취, 자극적인 음식이나 커피 조심 등이 할 수 있는 것들이라 알려져 있는데 뭐 보시다시피 이것들은 사실 그 어느 병에 갖다 대도(아니, 평소에도 기본적으로) 똑같이 해야 할 것들이다.
그렇다 보니 가뜩이나 잦은 속병과 체중 감소로 여러모로 골골대면서 건강 관리를 위한 한 줄기 빛으로 요가를 몇 년 간 꾸준히 해오던 내게 그조차 이제 못할 짓이 되어버렸다. 요가는 전굴, 좌굴, 삼각자세 등과 같이 몸을 기울이거나 고개를 젖히는 동작들이 많다 보니 썩 좋지 않다는 얘기들이 지배적이다. 나 역시 이석증이 처음 생긴 그 순간 이후엔 또 괜찮아지는 것 같길래 평소처럼 스트레칭 삼아 간단한 요가를 하다가 이내 다시 쓰러지는 경험을 하였고, 치환술로 이젠 좀 괜찮아졌나 싶어 요가를 하던 그 어느 날 밤에 또 재발을 경험한 적이 있다(그러고 보니 나도 참 무모하고 무식하다).
요가를 단순히 건강 관리뿐 아니라,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게 되는 일종의 치유의 시간으로 여기게 됐던 터라 더 이상 요가도 못 한다는 낭패감이란 참으로 컸다. 계속 기분 나쁘게 스멀스멀 나타났다 사라지는 기분 나쁜 증상들을 견디면서 혹시 '지난번처럼 또 쓰러지는 거 아니야?'란 걱정으로 매일 침대에서 일어나게 되거나 평소에 자세를 바꿀 때도 절로 조심하게 되는 생활은, 생각보다 침투력이 컸고 나는 두 번의 재발 뒤에는 결국 꽤 울적해졌더랬다. '아, 왜 이런 일이 나한테?'란 억울한 마음에 속상했고 짜증 났다. '이걸 계속 달고 살아야 한단 말이야?'란 생각에 위축됐고 외로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했다 여겨지지만 그땐 별 수 없이 딱 그랬다.
그때. 날 편안하게 해 준 치료제는 의외의 곳에서 나타났다.유명한 의사가 처방해주는 약도, 어디 어디에 좋다는 건강보조식품도 아니었다. 그건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던 동료 샘의 따뜻한 손과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마음이었다. 그날 다른 상의할 것으로 작은 회의실에서 마주한 동료 샘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다다르게 된 나의 이석증 얘기에 많이 안타까워하였고 괜찮다면 기도해주고 싶다며 나의 허락을 구해왔다. 개인적으로 종교가 없는 나는, 평소 신앙심이 두터운 동료 샘을 "또 교회 언니 등장이군요~"라며 놀렸지만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기꺼이 '그러마' 했더랬다. 그리고 맞잡은 손을 타고 전해오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 담긴 기도문...
은 솔직히 1도 기억나지 않는다(샘~ 미안해요 ^^;). 하지만 너무나도 기억난다. 아니 몸으로 체험되었다. 1평이나 될까 말까 한 그 작은 회의실을 가득 채운 따뜻한 온기는. 그 온기를 타고 나를 감싸던 커다란 위로는.
그 뒤로 아직까지 이석증이 재발한 적은 없다. 안다 나도.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란 것을, 그리고 또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으리란 것도.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겼다. 위축되어만 있던 내 마음이 온기와 위로로 한번 가득 채워진 이후에는 덤덤함, 조금 더 힘을 주자면 대범함으로 바뀌었던 것. '또 걸린 들 어쩌겠어, 다행히 죽을병은 아니잖아!? 지나가겠지~', '그냥 할 수 있는 것은 하며 지내자, 커피는 디카페인으로 먹고 요가 대신 걷기 운동해보지 뭐~' 그렇게잔뜩 졸아있던 마음이 살짝 커진 거다.
우린 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곧잘 난 '인생의 터널'로 비유하곤 한다. 운전을 하다 보면 마주치지 않던가, 그 어두컴컴하고 답답한 터널들을. 대체 언제 끝나나 싶게 긴 터널도, 짧긴 한데 또 나오고 또 나와 이건 또 언제 끝나나 싶게 반복되는 터널도 있다. 어쨌든 빨리 지나가버리고 싶은 것만은 분명한데 그런 마음과 달리 늘 난 아직 터널 속이고 그 끝이 잘 보이지 않아 막막하기만 하다. 그때 어떠한가. 혼자 운전할 때와 달리 누군가 조수석에 함께 있을 때, 사뭇 덜 무섭고 덜 지루하지 않던가. 하다못해 라디오나 음악이라도 틀어 누군가의 목소리로 함께 지나야 덜 외롭지 않던가.
이석증은 저리 가라 싶게 버라이어티하고 더 고단한 인생 터널에서 우리를 지탱해주는 건 사실 별 거 아니다. 그저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 그로부터 전해지는 진심 어린 위로. 그런 존재 하나만 있어도 우린 그 터널을 지나갈 수 있다. 사람이면 가장 좋겠지만 꼭 아니어도 괜찮다. 내가 어딜 가든 졸졸 쫓아와 슬쩍 제 궁둥이든 머리든 그 어딘가를 살짝 붙여야 좋은, 내 강아지 단지처럼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반려동물도 좋다(어떨 땐 사람보다 더 위로된다 생각될 때도 있다). 그도 아니라면 (정당한 대가로) 날 따스하게 대해줄 수밖에 없는 비싼 음식점이든 네일숍이든 다 좋다. 그래야 좀 더 씩씩하게 그 터널을 지나갈 수 있다. 그리고 만난다. 그 터널 끝에 환하게 펼쳐지는 밝고 시원한 풍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