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낙이란,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많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의존에서 지켜주고 위로가 되어주리니

by 빛들때

'너 때문에 산다', '~ 없으면 못 살아', '~만이 내가 사는 낙이야' ... 이런 류의 얘기를 들으면 어떤가. 일편단심 의리 있고 오매불망 숭고하 느껴지는가? 혹은 그런 집중의 대상이 있다는 게 부럽게 느껴지는가? 아니다. 이런 류의 얘기를 들으면 반드시(!) 위험하다 느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삶의 낙이란 여기저기 구석구석 많아야 한다. 굳이 수식어까지 붙이자면 '너저분하게'가 낫겠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질서 없이 어지게 널려있게'. 물론 '다양하게', '다채롭게' 등등의 예쁜(?) 말도 쓸 수 있겠지만, 그럼 너무 깔끔하고 그럴듯하게 여겨지는, 이를테면 내세울 만한 것들만 떠올리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 굳이 엄선한 단어다. 그만큼 아무것이든 좋단 의미다. 돈 드는 것, 안 드는 것. 시간이 많이 드는 것, 적게 드는 것. 누군가와 같이 할 수 있는 것, 혼자 해야 하는 것. 자랑하고 싶은 것, 내밀하게 나만 알고 싶은 것 다 좋다. 무엇이든 여기저기 구석구석 너저분하게(!) 있어야 한다. 왜? 삶의 낙이란 게 한 군데에만 집중되는 건 너무 위험하니까.



삶의 낙이 '그저 술 한 잔'인 남자는 알코올을 못 먹는 상황에 닥치면 감정을 주체하기가 쉽지 않다. '자식' 하나 바라보고 사는 여자는 그 자식이 자신을 실망시키거나 다른 여자에게 떠나 가버리면 인생이 뻥 구멍 난 것처럼 느낀다. 오로지 '여자 친구'에게만 목매는 남자는 그 사랑이 끝나면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일에서의 '성공' 하나 바라보고 달려온 사람은 실패했을 때 전부를 잃은 것처럼 추락한다. 이렇게 전적으로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 그것이 '의존'이다. 그리고 의존이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바로 '중독'이 된다. 그러니 위험한 거다.



다행히도 나는 삶의 낙이 정말 '너저분하게' 많은 사람이다. 나이 들면서 점점 그 너저분 정도가 세지는 걸 보면 이것도 나이 듦의 축복 중 하나인 것 같다. 어젠 유난히 얼굴 붉히는 꼴이 꼭 사연 있어 뵈는 저녁노을이 그랬다. 남편이 크래커로 만들어준 초간단 카나페가 그랬다. 오늘은 출근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그랬다. 호가 딱딱 바뀌어 예상보다 2분이나 일찍 도착한 출근 시간이 그랬다. 잘 말려 원하는 웨이브가 나온 내 머리 스타일이, 직장 동료의 작은 친절, 피곤을 사르르 풀어주는 달달한 초콜릿 한 알이 그다.



그리고 또 매일매일 내 강아지 단지를 만질 때가 그렇다. 꼬불꼬불 복슬복슬한 털 사이로 손을 쑤욱 넣으면 살짝 뜨끈뜨끈한 그 녀석의 살이 그렇다. 그 밑으로 제법 단단하게 만져지는 뼈들도 그렇다. 머리끝부터 발 끝, 꼬리까지 쑤욱 쓰다듬노라면 슬쩍 귀찮아진 녀석이 그만 하라며 내 손을 날름 핥는 바람에 느껴지는 그 혓바닥의 따뜻함. 그래도 멈추지 않으면 한 서너 번 참아주다 끝내 '으르렁' 소리 내며 무는 척하는 그 이빨의 차가움. 그 앙다무는 힘 때문에 느껴지는 귀여운 통증. 그 모든 것들이 다 내 낙이다. 위로다. -다른 얘기지만, 어떤 대상을 상실하면 흔히 시각적인 것만 그리워할 거라 여기기 쉽지만(보고싶다),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것 중 하나가 촉각이란(만지고 싶다) 사실-



이렇게 삶의 여기저기 구석구석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작은 '낙'들이 주는 위로의 힘은 꽤 강력하다. 이걸로 안 된다 싶을 때 세 공허해지거나 망가지는 게 아니라 다른 걸로 채워줄 수 있다. 손쉽게 취해질 수 있는 건 당장 할 수 있고, 좀 공들여 취해야 는 덕에 집중도 하게 된다.



그러니 우리, 각자 부지런히 더 너저분해질 일이다. 여기저기 곳곳에 작은 '낙'들을 흩뿌려놓을 일이다. 그래서 그것들이 내 삶 구석구석, 손 끝 발 끝 지척에서 걸리적거는 통에 내 기분이 나락일 때도 쉬이 건져 올릴 수 있도록.



게다가 넌 너무 만지고 싶게 생겼어. 그리 곤히 자고 있을 땐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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