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테니스 엘보란다, 젠장

그래도 어제의 나보단 오늘의 내가 더 낫다

by 빛들때

이전 글에서 이석증 이야기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번엔 테니스 엘보다, 젠장.


* 테니스 엘보 : 팔꿈치 과사용 증후군의 일종으로 손상 부위 인대에 미세한 파열이 생겨 통증이 나타나는 증상(다음 백과사전)


며칠 전부터 오른손 팔뚝 바깥쪽이 아파온다 싶더니 급기야 양치할 때도, 펜을 쥐거나 심지어 그 작은 로션 펌프를 누를 때조차 저릿하더니 드디어 통증 때문에 새벽녘 자다 깨기에 이르렀다.



결국 찾아간 정형외과에서는 '테니스 엘보'란 진단명 하에 '어디 한 번 더 아파봐라' 하는 것 같은 충격파 치료를 포함한 물리치료를 해주었고, 당분간 챙겨 먹어야 할 소염진통제,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잔뜩 안겨 주었다. 가만 보면 오른쪽 팔이 '있지만 없는 것처럼' 지내란 것들이다. 팔로 당기고 미는 동작도 하지 말아얄 것들에 속하는 지라, 어쩔 수 없이 한참 재미 붙이고 있던 필라테스도 당분간 할 수가 없게 됐다.


요즘의 나를 아는 지인들은 정말 믿기 어려워들 하지만, 한때 나에게도 '불사조'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강철 체력을 자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술을 엄청 먹어도 다음 날이면 너무 멀쩡해져 또 술을 사달라 선배들을 졸라대곤 했고, 같이 등산이라도 가면 아무리 '악산'이래도 청바지에 스니커즈로 가뿐할 정도였다. -쓰고 보니 무모함도 컸다 싶다- 20년도 훌쩍 지난 20대 초반의 얘기지만, 정말 그땐 그랬다.



그랬던 때가 무색하게 이젠 해 한 해 몸이 다다. 사람들과 농 삼아 얘기하는 '알코올 총량의 법칙'에 따르자면, 난 이미 20대에 80%를 써버린 탓에 30대에는 주종 불문 한 잔만 마셔도 숙취에 다음 날이 괴로울 지경에 이르면서도 꾸역꾸역 나머지 10%를 써버린 듯싶고, 40대는 급격한 체력 저하와 잦은 병치레로 끝내 금주로 맞이했다. 지금은 나머지 10%를 까칠하지만 친절한 할머니가 되었을 때 우아하게 마시고 싶단 목표로 고이 아껴두며 운동으로 체력 단련 중이랄까.



그런데 이게 참 요원하다. 앞서도 말했듯 한 해 한 해 몸이 다르다. 위장염에 그렇게 괴롭더니 저혈압, 고지혈증, 이석증이 해마다 연이어 붙어왔고 올해는 좀 넘어가나 싶더니만 결국 테니스 엘보라니, 젠장. 이 비루한 몸뚱이여.



그럼에도 누가 나에게 "과거로 돌아갈래?"라고 묻는다면 난 절레절레 고갯짓과 함께 분명히 답하련다. "아뇨"



왜냐고? 비록 이젠 비루해진 몸뚱이를 모시며 살아갈 수밖에 없어도 어제의 나보단 오늘의 내가 낫기 때문이다. 몸뚱이는 비루해졌을지언정, '천하고 너절하다'는 뜻을 가진 '비루하다'는 단어조차 따뜻하고 곱게 여기고 애정 할 수 있는 영혼이 생겼기 때문이다. 보통에 더 감사하는, 약한 존재를 더 연민하고 품게 되는, 자신의 꼬락서니를 제대로 보고 아껴줄 수 있는, 무모하고 격렬해지기 쉬운 감정에 (종종 실패하더라도) 점점10초의 거리를 둘 줄 아는, 지인들과의 연대를 귀하게 가꿔가는, 죽음을 더 자주 생각며 지금을 더 충분히 살려하는. 그런 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매일 늙어가는 중이지만 매일 거듭나는 중이다. 세계적인 임상심리학자이자 작가 메리 파이터는 노년의 항해를 다룬 책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티라미수 펴냄)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오래도록 갖고 있던 정체성의 일부를 잃겠지만 그 대신 새로운 정체성을 얻고 다양한 측면으로 확장해나갈 것이다. 어떤 역할을 상실하는 대신, 신선하고 유용한 새 역할을 받아들임으로써 균형을 맞출 것이다, 나는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렇게 나도, 매일 늙어가는 중이지만 더 좋아지는 중이다. 그 옆에 함께 늙어가는 내 10살 강아지 단지가 있다. 새끼 단지가 물론 더 귀여웠지만, 지금의 단지에겐 '귀엽다'는 단어가 품기엔 벅차게 커져버린 '사랑스러움'이 있다. 함께 한 세월에 켜켜이 쌓인 '척하면 척'의 이해와 공감, 그윽하게 바라봐주는 인내와 수용, 존재 자체가 주는 위로와 감사함이 있다.



그러니 단지야, 우리 더 늙어가자. 더 좋아지자. 그렇게 아주 아주 좋아 '죽자'.


진짜 꼬물꼬물 너무 작았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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