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중간에 포기하거나 다른 길로 새지 않고 '상담 밥'만 한 10여 년 먹다 보니, 부족하지만 저만의 상담 색깔이 조금씩 생기는 거 같단 생각이 드는 요즈음입니다. 부끄럽지만 이제까진 이렇게 해 보고 저렇게 해보면서 여러 내담자(상담을 받는 분)를 괴롭혔고, 그러다 한계에 부딪히면 이거 따라 해보고 저거 따라 해보며 다른 상담자를 흉내내기 바빴지요.
여전히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근래 생긴 저만의 상담 색깔에서 두드러지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기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내담자의, 그리고 저 자신의 기분이요. 그것도 예전 같으면 '감정'이란 말로 많이 썼던 거 같아요. 그러나 요새는 '기분'이란 말을 더 쓰는 편입니다. “그때 기분은 어떠셨어요?", “최근 일주일간 주로 어떤 기분으로 지내시는 거 같아요?", "00님 기분이 중요해요.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려면 뭘 하실 수 있겠어요?" 이렇게요.
심리학에서는 감정, 기분, 그리고 하나 더 넣자면 정서, 이 세 가지 각각을 구분해서 사용하곤 하는데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상담심리학 박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이 셋의 분명한 차이를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 대신 제게 분명해진 것은, 이 셋 중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말은 바로 '기분'이라는 것입니다. 소위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살펴보고 이야기하고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감정이 어떠냐?'는 질문은 자체가 퍽 어렵게 들리는 거 같아요. 이를테면 감정을 드러내는 건 약하다 배워온 40대 이상의 남성분들, 아니면 여러 감정이 너무 들끓어서 대체 자기도 뭐가 뭔지 모르는 10대 청소년들, 참는 데 너무 오래 길들여져 버린 착한 분들에게 말이죠. 꼭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한번 스스로 물어보세요. '지금 내 감정은 어떻지?' 아니면 '지금 내 기분은 어떻지?' 어떠신가요? '기분’이 조금은 더 쉽게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잘 살펴보면 '감정'에 대한 질문은 자신의 상태를 설명해야 하는 말을 골라야 하는 관문이 있는 반면, '기분'에 대한 질문은 우선은 '좋다. 안 좋다’ 즉 자신의 상태를 드러낼 수 있는 단어를 바로 답할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주관식이냐 객관식이냐의 차이일 수도 있겠네요. 마음이 가뜩이나 복잡할 때 누군가의 어려운 질문은 머리를 더 지끈거리게 하죠. 그러니 이럴 때는 복잡한 주관식보다는 단순한 객관식이 더 적절한 접근 방식일 수 있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내 기분이 어떤지를 먼저 살펴보는 거죠. 그러고 나서 기분이 좋다면 어떨 때인지, 반대로 안 좋다면 뭣 때문인지 조금 더 가보는 겁니다. 그것도 그냥 단순하게요. 내 기분에 영향을 준 게 어떤 일인지 혹은 놈인지.
이렇게 말하면 상당히 단순하게 들리지만 기분이 우리의 생활, 더 나아가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학창 시절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공부 좀 해볼까~ 책상에 앉았는데 엄마 잔소리 한마디에 기분이 확 상해설랑은 '에라, 이딴 공부 때려치운다' 이러면서 아예 그날 책은 들춰보지도 않으셨던 경험 있지 않으신가요? 어른이라고 다를까요, 엄마에게 짜증 내지 말아야지 어제 다짐해 놓고선, 밖에서 친구와 다투고 와 기분도 안 좋은데 “요즘 취직 준비는 잘 돼 가?”라고 넌지시 묻는 엄마에게 “그게 그렇게 쉬워? 엄만 왜 맨날 닦달이야!”라고 빽 소리를 지른 경험은 또 어떤가요?
기분이 좋아야 말 한마디도 예쁘게 나가고, 공부를 해도 집중이 잘 되고 뭐든 더 할 수 있습니다. 기분이 나쁘면 말도 퉁명스러워지고, 행동에도 짜증이 묻어나고, 집중력도 효율성도 다 떨어집니다. 그러다 보면 전부 다 엉망진창처럼 느껴지고 그런 내 삶 전체가 우울하게 느껴지기 쉽습니다. 결국 지금 내 기분이 어떠냐가 전반적인 내 삶에 대한 평가에도 영향을 주는 거죠.
그러니 여러분, 단순하지만 중요한 '기분, 이 기분을 잘 살펴주세요. 우선 평소 내 기분이 어떤지 잘 알아차려야겠지요, 오늘 내 기분이 좋다면 그대로 감사할 일이고요. 반면에 기분이 좋지 않다면 왜, 뭣 때문인지, 그리고 가능한 빠르게 '어떻게 해야 지금 내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에 집중해주셔야 합니다.
앞으로 저와 정작가가 여러분과 함께 할 이야기는, 바로 그런 기분에 대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평소 생활에서 많이 노출되는 기분들을 살펴보면서 '아, 그래서 내가 그랬구나~' 이해해보는 시간이 되실 거예요. 그리고 '이런 기분일 때는 이렇게 해보는 게 좋겠구나' 다독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특히 기분 전환의 방법으로 여행을 선택하고자 하는 여러분께, 그런데 막상 어디를 가야 할지 거기서부터 막막함을 느끼는 여러분께, 그래서 ‘에이, 여행은 무슨 여행이냐. 내가 하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며 다시 방구석에 틀어박혀 처지는 시간들을 보내고 더 우울해진 기분을 느껴본 여러분께, 여행 전문가인 정작가의 길라잡이는 여러분을 적절한 장소로 쉽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안내해줄 거예요.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지금, 여러분의 기분이 썩 좋길 바라봅니다.
* 정작가: 정은주 여행작가. 우연한 기회에 여행 기자가 되었다. 몇 년간 여행 신문과 여행잡지 『트래비』에서 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니다 돌연 사표를 내고 1년간 캐나다로 떠났다. 이후에도 언제든 기회만 되면 집 밖을 떠돌 궁리를 했다. 지금은 취재차 들른 제주도에 반해 수년째 눌러살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캠핑카를 집 삼아 전국을 떠도는 게 꿈이다. 현재 다수의 매체에 글과 사진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커플여행 바이블』, 『제주가자』, 『차 없이 떠나는 제주여행 코스북』, 『교과서가 쉬워지는 제주여행』등이 있다. 모든 여행 사진을 전담하고 있는 남편과 함께 오늘도 '여행 중'이다. 여럿이 함께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저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노을을 보면 살짝 쓸쓸해지곤 해요. 그런데 또 그래서 가장 감격스럽죠. @2018년 궁평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