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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들때 Feb 13. 2023

2.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걱정될 때

잔뜩 커진 걱정 보따리를 티끌처럼 가벼이 품어줄 곳으로

시작. 새롭고 설레고 기대되고 기분 좋게 가슴이 콩닥거리고 잘 해낼 거 같고 막 얼른 하고 싶고...?! 어, 아닙니다. 시작이 그렇다고 누가 그러든가요? 아, 그렇게 많이 취급되긴 하죠. 곧잘 노래들에서도 '새로운 시작은 늘 설레게 하지'라며 쿵쿵~ 어쩐지 진취적이게 느껴지는 장단으로 흥얼거리고, 여러 글귀들에서도 '시작=설렘'의 공식은 쉽게 찾아지니까요.      


그런데 전 오히려 시작, 하면 조금 긴장이 되면서 살짝 목 뒤가 뻣뻣해지는 것도 느껴지는 1인입니다. 자연스레 옛 기억도 떠올려지고요. 매년 3월 새 학년이 되던 학창 시절 말이에요. 여러분들은 어떠셨나요? 그때 늘 편안하셨나요?      


전 새 학년이 시작되면 늘 걱정 한 보따리가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그 보따리의 이름은 '친구가 안 생기면 어쩌지?'라는 것이고요. 그렇다고 제가 학창 시절에 친구를 잘 못 사귀는 편이었냐, 면 사실 그렇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제법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었죠. '핵인싸'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인싸'라고 우기면 우겨질 정도였달까요 ㅎㅎ 그럼에도 새 학년은 낯선 친구들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거니까 자연스레 혹여 친구가 안 생기면 어쩌지, 란 걱정에 며칠간은 잠도 살짝 설치고 앞뒤 애들 눈치도 많이 보며 지냈답니다. 그러고 나서 어느새 친구가 생기고 그 속에서 즐겁게 지내다 보면 언제 그런 게 있었냐는 듯 걱정 보따리는 사라진 채, '참 쓸데없는 걱정을 했구나'란 생각까지 하곤 하죠.   

   

이 얘기에 제법 공감 가는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꼭 옛날 학창 시절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새로운 시작에 자주 노출되곤 하죠. 공무원이나 교사 등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할 때, 어렵게 취직한 회사에서 처음 내 일이라는 걸 맡게 됐을 때, 그동안 아슬아슬 친구와 썸의 경계 사이에서 줄타기만 하던 남사친과 정식으로 사귀기로 했을 때. 자연스레 우리는 걱정 한 보따리와 함께 하게 됩니다.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실패해서 내 20대 청춘이 그냥 가버리면 어쩌지?', '실수만 하고 일을 못해 상사가 날 한심하게 여기면 어쩌지?', '남친이 내 본모습에 날 싫어하게 되면 어쩌지?' 등등. 그러니 시작이라는 것에는, '시작=설렘'의 공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작=걱정'의 공식도 성립되는 게 당연합니다. 허긴 '설레다'라는 단어 뜻이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들떠서 두근거리다'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쩜 앞단에 있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는 걱정으로 인한 걸로도 볼 수 있겠다 싶어졌어요.   

   

결국 지금 내가 어떤 시작을 앞두고 가슴이 초조하고 걱정이 많이 되는 게 걱정이시라면(에휴, 참 질기죠? 이 걱정이란 놈), 우선은 '아, 걱정되는 건 당연하구나'로 일단 자신의 걱정 보따리를 인정해 주실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그만큼 너무 잘하고 싶은 거니까요. 걱정이 클수록 가만 들여다보면 그만큼 절실하게 내가 잘하고 싶고, 성공 또는 인정을 얻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아니 시작도 하기 전에 이 무슨 재수 없는 소리야? 저리 가!' 하면서 외면하는 것도, '나만 이렇게 나약한가? 걱정하는 내 자신이 싫어'하면서 자책하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외면하고 자책한다고 사라질 놈이 아니거든요, 그 질긴 걱정이란 놈은. '그래, 내가 지금 걱정되는 거구나, 그만큼 잘하고 싶은 마음이구나, 그러니 실패가 두렵고 걱정되는 것은 당연한 거야'라고, 이미 내 옆에 찰싹 달라붙은 놈을 억지로 떼내려 하기보다는 일단은 그냥 두는 겁니다. 막 들여다볼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막 거부하지도 않으면서요. 그럼 그놈은 되려 '에잇, 이 자리는 이제 재미없네?' 하면서 슬쩍 다른 자리를 찾을 준비를 하게 됩니다.      


다음은, 한번 '실패'에 대한 여러분 자신의 생각을 점검해 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실패,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절대 해선 안 되는 것? 모든 게 망가지는 것? 내 삶에 있을 수 없는 것? 이런 생각들이 심리학적 용어로는 '비합리적 신념'이라고 일컬어지는데요. 이를테면 성공 아니면 실패라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사실 성공도 실패도 아닌 경우들도 있죠), 나는 모든 걸 완벽하게 해야 하며 그걸 못 하면 파멸이라는 '완벽주의'(모든 걸 완벽하게 하는 사람, 어디 있나요?), 다른 측면에 대한 고려 없이 부정적으로만 예측해 버리는 '파국화'(이를테면 일 하나 못했다고 내 회사 생활이 끝나는 건 아니죠) 등이 대표적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생각들은 결국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만은(!) 실패하는 사람이어선 안 된다'라고 하는 환상(fantasy)을 담고 있는 것이지요. 환상, 그러니까 영원히 이뤄질 수 없는 허상을 짝사랑하며 애달파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시작을 앞두고 계신 여러분들께 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겁니다. 잘하고자 의지를 내는 것도, 잘 될 거야라고 기대감을 갖는 것도 다 좋습니다. 다만, 그런 생각들 속에 '잘 안 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올라오면, 슬쩍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내 세상 전부가 무너지는 건 아냐. 게다가 아직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러니 그건 그때 가서!'라고 이야기해 주는 겁니다. 그리고 그냥 '그저 할 뿐'으로, 결과란 것은 어차피 내가 쏘아 올린 화살의 촉일 뿐. 그 촉은 내가 계획한 방향대로 갈 수도 있지만 때론 거친 바람이나 땅의 떨림 등 전혀 나의 의지나 능력과 상관없는 변수에 의해 살짝 다른 방향으로 꽂히기도 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내가 쏘아 올리고 싶은 방향으로 화살을 잘 겨누고, 그 화살이 잘 날아갈 수 있도록 내 자세와 호흡을 가다듬는 것, 그리고 그 화살을 한 두 번 더 쏠 수 있겠구나~라는 여지를 두면서 몸과 맘의 체력을 구비하는 것일 뿐임을 받아들여주세요.      


그리고 이럴 때는 널리 펼쳐진 망망대해, 아득하게 멀지만 고요한 수평선이 보이고 그 위로는 반짝이는 윤슬이, 배경으로는 거칠거나 박력 있는 산맥들이 함께 하는 그런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확 트인 곳으로의 여행이 어떨까요? 걱정에 답답했던 내 마음은 확 트인 시야처럼 덩달아 시원해질 거예요. 또 그런 대자연 앞에서 복작복작했던 나의 걱정이란, 그저 참 작은 일부에 불과하는 것임도 느껴질 거고요. 그렇게 확, 시원해진 마음으로 다시 시작을 바라보면? '그래, 뭐 까짓 거 그냥 하는 거지'라는 약간의 용기 한 줌이, 아직 질척대고 있는 걱정보따리를 살짝 더 저만큼 밀어주는 힘이 될 거예요.      


그럼, 그런 망망대해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정작가의 안내를 따라 한번 가볼까요?      

    


   

시작을 앞둔 이들을 위한 특별한 4색(色)4()   

변박사가 풀어놓은 이야기처럼, 시작은 언제나 설렘과 두려움을 동반하죠. 여행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저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곳으로 떠날 때, 마음이 들뜨지만 한편으론 선뜻 발을 떼는 것이 주저될 때가 있답니다. ‘과연 그곳이 정말 좋을까?’, ‘여행 중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그냥 집에 있을까?’ 하지만 막상 첫 발을 내딛고 나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걱정들이 어디론가 모두 사라져 버린답니다. 여행이 갖고 있는 힘이 바로 그런 것이지요. 일단 떠나보세요, 한 없이 넓고 푸른 바다가 시작에 앞선 모든 걱정거리들을 품어 줄 테니 말이죠.      


< 동해 >

아득하게 멀지만 고요한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 ‘망망대해’ 하면 역시 동해입니다. 해안선을 따라 바다와 나란히 달리는 7번 국도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이지요. 우리나라 최북단인 강원도 고성부터 부산 남포역까지 500km 남짓 이어져 있답니다. 바다를 끼고 내려오면서 마음에 와닿는 곳에 멈추면, 그곳이 바로 나만을 위한 여행지가 된답니다. 동해에는 바다를 조망하기 좋은 명소들이 많지만 번잡스럽지 않고 고요하게 즐길 수 있는 화진포 해수욕장을 추천합니다.       

강원도 고성 화진포 해수욕장

강원도 고성에 펼쳐진 아름다운 해변입니다. 북적거리는 것보다 여유롭고 조용한 분위기를 더 좋아한다면 이곳이 딱입니다. 요즘은 해수욕장에 조형물과 포토존 등 여러 가지 시설물을 설치해 놓은 곳들이 많은데, 그에 비하면 화진포 해수욕장은 날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인공적인 시설물이 거의 없어 자연 그대로 모습을 즐길 수 있답니다. 오로지 바다와 나에 집중할 수 있어요.  

아, 한 가지 빠뜨렸네요. 선 자리에서 뒤를 돌아보면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맥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겨울에 눈이라도 내렸다면 더욱 신비롭게 보입니다. 앞뒤로 꽉 찬 경이로운 풍경에 취해있다 보면 걱정거리란 태산에 내려앉은 티끌처럼 느껴진답니다.     

https://blog.naver.com/ontheroad_gh/222628973151



< 남해 >

이번에는 남해로 걸음을 옮겨볼까요. 워낙 유명한 부산의 해운대와 요즘 인기인 기장 해변을 비롯해 통영과 거제, 여수, 고흥, 완도 등 이곳에도 바다와 접한 지역들이 많습니다. 남해 바다는 ‘수평선에 걸린 섬’들이 큰 특징이지요. 바다에 점점이 박힌 크고 작은 섬들은 시작을 앞두고 두려워진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 안아 줍니다.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말이지요.       

거제 바람의 언덕

사실 바람의 언덕이라 이름 붙은 곳들이 전국에 몇몇 있는데요, 저는 거제도 바람의 언덕이 정말 딱 맞는 이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닷가 언덕에 서면 바람이 말도 못 하게 몰아쳐 오는데 신기하게도 그 바람이 그렇게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막힌 가슴까지 한 번에 뚫어주는 신비한 묘약처럼 말이죠. 물론 바람이 잔잔한 때도 많으니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걱정거리를 덜기 위해서 떠났는데, 걱정을 하나 더 얹게 되면 안 될 말이죠.  푸른 잔디가 깔린 언덕 아래로는 새파란 바다가 사방으로 펼쳐집니다. 맑고 투명한 물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머릿속 잡념들이 깨끗하게 비워지는 기분이 들어요. 수평선을 겹겹이 두른 섬들은 또 어찌나 예쁜지요. 언덕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시작을 앞둔 마음에 밝고 긍정적인 기운들이 쏟아져 들어온답니다.      

https://blog.naver.com/ontheroad_gh/222726902465     


< 서해 >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의 나라에서 서해도 빼놓을 수 없죠. 서해는 주로 바닥이 뻘로 이루어져 그런지 새파란 물빛은 아니지만 이곳만의 고유한 매력이 있답니다. 잔잔하게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와 해 질 녘 오묘한 빛의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마음을 차분하게 다지기 좋습니다.       

고창 구시포 해변

서해에도 대천 해수욕장을 비롯해 만리포, 무창포, 격포 등 쟁쟁한 장소들이 많지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는 고창 구시포 해변도 좋은 선택지가 되어 줍니다. 특히 해변에 서서 바라보는 낙조는 이런저런 걱정들로 머릿속에 번잡해져 있을 때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금 가다듬게 해 줍니다. 꼭 일출 앞에서만 새로운 시작에 대한 다짐을 해야 하는 건 아니죠. 오히려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오만가지 잡념들을 쿨하게 떠나보내고 그 빈자리를 새로운 마음으로 채워보는 건 어떨까요.      

붉던 하늘이 점점 오렌지 빛으로, 그리고 자줏빛과 짙은 보랏빛으로 차차 채워져 가는 대자연의 신비 앞에서 괜스레 심란했던 마음도 평정심을 되찾아 가지요. 그래, 까짓것 해보는 거지! 뭐가 될지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겠어?! 이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진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겠어요.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서해 낙조가,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https://blog.naver.com/ontheroad_gh/222887119653     


< 마라도 >

마지막으로 추천하는 여행지는 제주도의 부속섬인 마라도입니다. 우리나라 영토 중 가장 남쪽에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지요. 걸어서 30분 정도면 섬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는 작은 크기이지만 이곳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척 크다고 할 수 있어요. 섬 가장 남쪽에 ‘최남단비’가 세워져 있답니다. 이 비 앞에 서면 마음이 괜히 웅장해집니다. 마치 세상 끝에 다다른 기분도 들지요.       

한편으론 세상의 끝에서 다시 또 다른 세계로 이어진 새 출발의 기분도 든답니다. 마라도 앞바다는 대한민국이라는 경계를 넘어 태평양으로 이어져 있지요. 동해나 서해 모두 일본과 중국에 가로막혀 있지만 마라도에서는 더 넓은 바다로 뻗어나갈 수 있답니다. 여러 면에서 의미심장한 장소랍니다. 시작을 앞둔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 정작가: 정은주 여행작가. 우연한 기회에 여행 기자가 되었다. 몇 년간 여행 신문과 여행잡지 『트래비』에서 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니다 돌연 사표를 내고 1년간 캐나다로 떠났다. 이후에도 언제든 기회만 되면 집 밖을 떠돌 궁리를 했다. 지금은 취재차 들른 제주도에 반해 수년째 눌러살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캠핑카를 집 삼아 전국을 떠도는 게 꿈이다. 현재 다수의 매체에 글과 사진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커플여행 바이블』, 『제주가자』, 『차 없이 떠나는 제주여행 코스북』, 『교과서가 쉬워지는 제주여행』등이 있다. 모든 여행 사진을 전담하고 있는 남편과 함께 오늘도 '여행 중'이다. 여럿이 함께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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