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줄곧 태어난 나라에서 인생이 지속되리라 생각했다. 혼자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떠나는 게 일수였지만 먼 타지에서 터를 잡고 살 용기까진 없었으니까. 그러다 남편을 만났다. 그는 내게 없던 용기를 현실화 시킨 사람이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늦은 나이 홀로 유학길에 올라 결국 미국 시민이 된 사람.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나 좋은 직장을 관두고 부모님, 친구들과 떨어져 지구 반대편에서 살겠다고 했을때 어떤 이들은 사뭇 염려했다. 인정한다. 어쩌면 나는 그런 사람에게 기대어 가슴 깊이 원하던 '타지에서의 삶'을 실현시켰을지도 모른다. 혼자선 결코 해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이상과 꿈. 내게 그것은 이민이었다.
미국이란 '큰 나라'에서의 삶은 오히려 '작은 것'에 집중하는 생활의 연장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지만 일상 속에 마주하는 평범한 사람들 태반이 검소하다. 유행이 한국처럼 선명하고 빠르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무엇을 걸치고 드느냐의 문제는 별로 중요치 않아 보인다. 습관처럼 치장을 했던 사람으로서 처음 느껴보는 자유였다. 미니멀리즘같은 거창한 철학은 아니지만 예전엔 하루가 멀다하고 새것들을 사들이던게 굴레이자 집착이었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았다.
심심해서 어떻게 지내냐는 걱정을 뒤로하고 떠나왔지만 그 심심한 미국이 나란 사람에겐 참 편안하다. 내가 살고 있는 워싱턴 주는 바다를 끼고 산들이 많다. 침엽수로 우거진 숲이 지천에 있고 상쾌한 공기는 늘 기분이 좋다. 자연은 느낄 때마다 새롭고 그리하여 매일 마음은 들뜬다. 나의 신혼 생활은 참 소박한 순간들로 기쁘게 채워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은 첫번째 아메리칸 드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