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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dianjina Feb 24. 2018

들려줄게, 왜 내 인생이 끝났는지

[넷플릭스] 루머의 루머의 루머 13 reasons why

  여러분은 10대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사람들은 쉽게 간과합니다. 10대 시절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는 징검다리쯤으로 여기죠. 뉴스에서나 볼 법한 끔찍한 사건 속에 나의 가족, 친구, 혹은 자신이 개입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억을 자세히 들춰보면 그 시절 속에 우리는 충분히 위태롭거나 절박했습니다. 사소한 건 아무것도 없었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자행되는 학교 폭력은 때로 너무도 극악무도합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루머의 루머의 루머> (원제 : 13 reasons why)는 '해나 베이커'라는 한 여고생의 죽음, 정확히 그녀가 자살하기에 앞서 남긴 7개의 카세트 테이프로부터 시작됩니다.


왜 내 인생이 끝난 건지 이야기해줄게.
너가 이 테이프를 듣고 있다면
너도 그 원인 중 하나니까.



  그 중 한 명으로 지목된 ‘클레이 젠슨’은 누군가로부터 전달 받은 테이프를 듣게 됩니다. 드라마는 테이프에 녹음된 해나의 이야기를 따라 그녀를 자살로 몰고 간 13개의 사건들을 플래시백으로 보여줍니다. 총 13개의 면에 녹음된 죽은 여고생의 목소리는 너무나 담담합니다. 그것이 그녀가 죽음 앞에 더 이상의 여지와 망설임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해주죠. 양심과 선의를 지진 사람이라면 이야기를 보는 내내 꽤 깊은 우울감에 압도될지 모릅니다. 혹자는 자신의 중 고등학교 시절 존재한 '해나'를 떠올리게 될 수도 있죠. 이 픽션은 내 친구였던 누군가의 이야기 혹은 자신의 묻어둔 상처들을 대변하니까요.

 

#1 저스틴
해나와 썸을 타다 장난 삼아 찍은 사진 한 장이 학교에 퍼지고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시작점이 된다.
#2 제시카

해나와 같은 전학생이었고 서로에게 첫 친구가 되지만 알렉스로 인한 오해로 둘의 우정은 산산조각이 난다.

#3 알렉스

해나, 제시카와 함께 어울려 다녔으나 그의 낙서 한 장이 해나를 또 다른 희롱의 대상으로 만든다.

#4 타일러

해나를 스토킹하며 몰래 찍은 사진을 학교에 퍼뜨린다. 해나는 그로인해 또 한명의 친구를 잃는다.

#5 코트니

타일러에 의한 사건으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루머를 만들고 해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6 마커스

해나에게 발렌타인 데이 무도회 파트너를 제안하지만 해나의 몸을 더듬고 농락한다.

#7 잭 뎀시

해나에게 마커스와의 일을 위로하며 가까이 다가가지만 그녀의 오해로 거절당하고 치졸한 복수를 한다.

#8 라이언

해나가 시 낭독모임에서 만난 그는 동의 없이 그녀의 일기를 학교 잡지에 싣고, 그녀는 비웃음거리가 된다.

#9 브라이스

파티에서 제시카를 강간하는 모습을 해나가 목격하고 그녀 또한 브라이스에게 성폭행 당한다.

#10 셰리

셰리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생기고 그것을 숨기고자 목격자인 해나를 침묵케 한다.

#11 클레이

해나를 진심으로 좋아한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끝내 마음을 열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되고 심한 죄책감에 빠진다.

#12 포터

해나는 자살 하기 전 마지막으로 찾아간 상담 교사. 그가 자신을 붙잡아주길 바랐지만 끝내 희망을 포기하게 된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이런 것들이
세상을 스토커 천지로 만들었어.
우리는 모두 죄인이야.

  

  해나를 추모하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셀피를 찍고 해시태그를 붙여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SNS라는 공간 안에서 유대, 공감, 관계의 의미는 너무도 가볍게 변질되었죠. SNS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과거의 학교 폭력, 왕따 현상과는 또 다른 형태로 일어납니다. 해나는 그녀의 왜곡된 사진과 소문들이 학교 아이들의 페이스북 등에 퍼지고 익명의 조롱 속에서 심한 모멸을 당합니다. 미국의 한 연구소는 최근 미국의 10대 자살율이 높아지는 이유에 대해 SNS의 영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발표하기도했죠. SNS 속 학교 폭력은 더욱 은밀하고 가시적이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해나의 상처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세상엔 잘못된 게 너무 많아. 상처도 너무 많지. 내가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는 걸,
그리고 세상이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걸 감당할 수 없었어.


  위에 열거한 사건들로 인해 해나는 서서히 파멸되어 갑니다. 과연 저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상황을 바로잡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요? 그녀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상담교사는 그녀를 성폭행한 남학생을 고소할 자신이 없으면 상처를 잊는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절벽 끝에 서 있던 해나를 밀어 버리는 결과를 낳았죠. 트라우마가 영원히 자신을 지배할 거란 절망에 압도된 채 그녀는 욕조 안에서 스스로 동맥을 끊어버립니다. 그 장면을 편집하지 않고 배경음악조차 없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보여준 것은 의도된 연출이었다고 합니다. 드라마는 해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친구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기관을 자막으로 내보내기도 합니다. 성폭행 피해자들이 쉽게 용기를 낼 수 없는 구조를 서사적으로 풀면서도 불편한 장면들을 여과없이 보여주며 그들의 고통을 오롯이 담아낸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더 잘 대해줘야 해요.
서로를 더 위해야 하구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 10대들의 에피소드를 다루는 드라마가 여러 편 있지만 이 드라마는 어른들이 꼭 봐야 할 시리즈입니다. 학교라는 사회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수많은 해나가 존재하니까요. 최근 #metoo 운동을 통해 세상에 조금씩 드러나고 있듯이 말이죠. 더불어 자녀가 있다면, 아이들을 이해하는 방식을 달리 할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드라마를 보며 어릴적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이 불완전했던 시절의 나를 받치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너는 여자니까. 혹여라도 앞으로 어떤 안 좋은 상황에 놓이게 되어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 점을 믿고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엄마에게 이야기해야해." 자아가 성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겐 자신을 지탱시킬 누군가의 확신과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해나에겐 결코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라도 그녀의 절망 끝에 혼자라는 생각을 바꿔주었다면, 그녀의 선택은 달라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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