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회사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한 한 인도인이 한 말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는 싸울 일이 없다.
결이 비슷하고, 속도가 비슷하고, 기대치가 비슷하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통한다. 갈등은 대개 ‘틀림’이 아니라 ‘다름’에서 시작된다. 문제는 그 다름의 간극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데 있다.
원시 부족 사회부터 북유럽 선진국까지를 49단계의 의식의 스펙트럼으로 놓고 본다면, 우리는 서로 다른 단계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 감각, 책임의 개념, 공동체 우선순위, 개인의 선택권, 제도에 대한 신뢰 수준까지 전부 다르다.
“왜 답이 이렇게 느려?”
우리에게 5분은 5분이다. 약속은 약속이고, 멀티태스킹은 능력이다. 동시에 세 가지 일을 처리하는 것을 효율이라고 배운다.
그러나 어떤 사회에서는 5분이 ‘조금 있다’는 의미일 수 있다. 한 가지 일을 끝내기 전에는 다른 일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성실함일 수도 있다. 관계가 업무보다 우선인 문화에서는, 속도보다 분위기가 중요하다.
세계 아이큐 평균 순위를 보면 한국은 1위권(평균 약 106 수준), 인도는 50위권(평균 약 76~82 수준으로 추정된 연구도 있음)이라는 자료가 있다. 이 숫자만 보면 단순 비교가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국가 단위 평균 IQ는 교육 접근성, 영양 상태, 조사 방식, 표본 편차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절대적 우열의 지표로 보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한국 회사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한 한 인도인이 이런 말을 했다.
한국에서 바로 인도로 주재원으로 온 사람들은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주변 국가에서 이미 주재원 경험을 하고 온 사람들은 다름을 이해하고 기다려 줄 줄 안다고 했다.
차이를 ‘고쳐야 할 문제’로 보지 않고, ‘이해해야 할 맥락’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두르기보다 관찰하고, 판단하기보다 질문한다.
결국 인도에 와서 모두가 하나의 숙제를 푸는 셈이다.
왜 다를까.
왜 이렇게 느릴까.
왜 이렇게 복잡할까.
그 질문을 붙잡고 이해의 폭을 넓히고 돌아가는 사람과, 끝까지 ‘왜 안 바뀌지?’라고 묻다 지쳐버리는 사람의 차이는 작지 않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는 압축 성장의 결과다.
1960년대 1인당 GDP 100달러 미만에서 2020년대 3만 달러 이상으로 성장하는 데 6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속도는 생존 전략이었고, 완벽주의는 경쟁 전략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인도는 14억 인구, 28개 주, 22개 공용 언어, 카스트와 지역 정체성이 공존하는 사회다. 이질성과 복잡성이 기본값이다. 느림은 무능이 아니라 구조적 현실일 수 있다.
‘슬로우 소사이어티’는 게으름이 아니라, 관계와 맥락을 우선하는 사회 구조일지도 모른다.
빠름과 느림 중 무엇이 옳은가의 문제는 아니다.
어느 단계에 서 있는가, 그리고 서로 다른 단계가 만났을 때 얼마나 이해하려 하는가의 문제다.
비슷한 사람과는 싸울 일이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순간, 우리는 한 단계 확장된다.
내 안의 무언가가가 깨져야 한다는
그 확장의 과정이 불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