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바가지 세 번 쓰고 깨달은 것

“다음에는 그러지 말자”라는 예방주사

by 윤수팔팔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꼈다. 한국에서는 기본적으로 가격으로 사람을 속이는 일이 흔하지 않다 보니, 인도에 온 후에도 한동안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정찰제가 아닌 곳에서는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기 전에 반드시 가격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왜 자꾸 잊는 걸까. 나만 그런 건지, 외국인 요금이 따로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저 당하고 난 뒤에 후회할 뿐이다.


그래서 바가지를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다음에는 그러면 안 돼”라는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인생 수업료를 냈다고 여기기로 했다. 최근 기억나는 수업료 세 번.


(1) 군고구마

인도에서는 일단 길거리 음식은 위생상 추천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쇼핑몰 근처에 있기도 했고 마침 배가 너무 고파서 군고구마 한 판을 달라고 했다. 레몬즙과 양념 가루를 뿌린 삶은 고구마 한 접시가 보통 10루피(약 160원) 정도라는 것을 예전에 몇 번 사 먹으며 알고 있어서 가격 문의를 생략하고 “하나 주세요”라고 했다.


무의식적으로 한 입 먼저 입에 먹고 “얼마예요?”라고 물었는데, 가격이 무려 10배로 뻥튀기되어 있는 것을 듣고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겨우겨우 흥정을 해서 두 배 정도 가격으로 주고 나왔다. 기분도 나쁘고, 먹다가 돌가루 같은 것도 씹혀서 더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구마 가격을 좀 안다고 순간 정신줄을 놨던 걸까. 인도 생활 12년 차에도 이런 실수를 하다니. 역시 생존력 만렙이 아니면 적응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2) 망고

남인도 바다 근처에서 망고를 파는 곳을 보고 “한 접시 주세요” 했다가 또 바가지 요금에 걸렸다. 여행자 모드가 아니라 한동안 해외 생활 직장인 모드로 살다 보니, 바깥세상이 얼마나 거쳤는지 잠시 잊고 있었다. 익숙함에 의식이 그렇게 세팅되어 있었던 것 같다.


집에서는 망고든 감자든 온라인 배달 앱을 이용하다 보니 가격 검증 절차 없이 장바구니에 담고 주문 후 결제하는 것이 익숙하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 오면 이상하게 정신줄이 느슨해지는지 가격 확인을 하기 전에 주문을 해버렸다.


얼마인지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망고가 먹기 좋게 손질된 뒤였다. 얼마나 바가지를 썼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옆에서 구경하던 인도 사람들이 나에게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할 정도였다.

온라인 주문 망고 / 약 2000원
바가지 썼던 그 망고


(3) 식물 영양제

화초 몇 개를 주문했는데, 식물을 배달해 준 아저씨가 우리 집에 원래 있던 식물들을 보더니 영양제를 뿌려도 되냐고 물었다. 이걸 한 번 뿌리면 3년 동안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고도 했다.


식물 건강에 좋다고 하니 그러라고 했다. 얼마나 하겠어, 다이소에서 1천 원에 파는 그거겠지. 인도니까 더 싸겠지 하고 가격도 묻지 않았다. 동네 사람이라고 방심한 나의 불찰이었다.


이미 다 뿌린 뒤라 화분 하나당 한 병에 8,000원이라며 총 8만 원을 달라고 했다. 그렇게 비쌌으면 처음부터 안 했을 거라고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식물 아저씨와는 괘씸죄로 자연스럽게 손절했고, “아 또 당했네” 하는 속상함이 잠시 있었다. 게다가 3년은 건강할 거라던 식물들은 하나둘 죽어가고, 그걸 보니 내 마음도 같이 죽어갔다.


그래도 이번에도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믿고 주문할 수 있다는 것.

흥정 과정을 생략해도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


그게 기본값인 한국이 문득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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