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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 공책 Apr 25. 2018

비는 혼자 소리 내지 않는다

비와 부딪히며 내는 소리 이야기


비 오는 날, 길을 나섰다


  지인의 집을 나섰다. 스스로를 내몰고 싶던 터였다. 하지만 가는 날, 많은 비가 내렸다. 택시를 탔다. 미터기 고장이라는 명분으로 보기 좋게 사기를 당했다.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택시 기사의 손을 잡고 썩은 미소를 날렸다. 어디를 가든지 호갱(호구 + 고객)은 있나 보다. 타문화에 대한 어설픈 이해가 부른 참사 앞에 나는 어수룩했다.


  게스트 하우스의 체크인 시간까지 서너 시간이 남았다. 비 오는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의 모습 그대로 걷고 또 걸었다. 입고 있던 형광색의 우의가 방수라는 기능을 망각했다. 비가 나인지 내가 비인지 모를 정도의 축축함이 머리부터 천천히 느껴졌다. 빗소리가 점점 거세지자 비를 피할 곳을 찾아 헤멨다.



성 요셉 성당


  쉴만한 곳을 찾기 위해 지도를 봤다. 성 요셉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식민지 역사의 가장 오래된 잔재라든지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영감을 얻었다든지 하는 말은 지금의 내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단지 비를 피하고 싶었다. 성당이 좋았다. 신을 예배하는 곳이라면 비를 피해 안식할 수 있으리라.....


  성당이 보였다. 하지만 성당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비신자들로부터 종교라 불리는 것들은, 인간이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에 늘 침묵으로 답하지 않았나. 순간 나는 권터 그라스의 오스카가 되었다. 양철북의 오스카가 성스러운 조각상을 때렸던 것처럼 성 요셉 성당의 귀싸대기를 때리고 싶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비는 여전히 많이 왔고 나는 여전히 쉴 곳을 찾았다.



결국은 소비하는 곳이 유일한 쉼터인가



  식당이 보였다. 그 간판 아래로 번쩍거리는 와이파이 표시가 눈길을 끌었다. 비를 피할 유일한 안식처인 셈이었다. 쉴만한 곳에서 풍기는 짭조름하고 달짝지근한 냄새는 물에 빠진 들쥐를 유혹했다. 짙어진 형광색의 병든 들쥐는 잠시 주변을 서성이다가 식당에 들어갔다.


  빗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비가 내게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나지 않을 터인데도 빗소리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이상했다. 비가 그친 시점에도 빗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이상했다. 나는 여전히 비에 부딪혔고 비는 벙어리의 소리를 대신 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따닥딱딱 후두두둑
따닥딱딱 후두두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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