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를 기억하고 오늘을 나서는 아침
16층. 도시가 한 눈에 보이는 넓은 집 안에 정적이 흐른다. 간혹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건물 짓는 소리가 들려온다. 습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불쾌한 감정인지 설렘인지, 육체의 피곤함인지 모를 감각이 몸을 휘감는다. 그것은 몸 안에서부터 몸 밖으로, 몸 밖에서부터 몸 안으로 퍼진다. 친구라 하는 타자가 살아가는 삶의 단편 속에 거한다는 것은 늘 새로운 감각을 일깨운다. 좋은 자극이다.
어제의 일을 떠올린다. 습한 공기, 도로 위의 오토바이, 흐린 하늘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병원에 갔다. 친구의 손에 붙들려 얼떨결에 따라간 곳에서 놀라움을 경험했다.
위치만 확인하고 찾아간 병동에서 소리 없는 탄성을 봤다. 그것은 경이로웠다. 그들은 아니 공통의 시선 앞에서 우리가 된 사람들은 작은 생명체의 미세한 움직임에 하나같이 반응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생아가 다 자란 어른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현장이었다.
병문안을 간 곳에서 쉼을 얻고 나왔다. 기찻길이 보였다. 마침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4일동안 달리는 장거리 기차라고 말이다. 설명이 부족했다. 이 눈에 기차만 보이지 않았던 터다. 눈 앞에 생생히 보였던 다른 것에 대한 설명도 듣고 싶었다. 허나 묻지 못했다. 기차가 지나간 자리, 생과 사의 자취만 보였기에.....
어제 산 치즈를 입에 넣는다. 나는 안다. 입안 가득히 퍼지는 치즈의 풍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사람들은 젖 짜는 기계에 소의 젖꼭지를 맞춘다. 젖 짜는 기계의 구멍 개수는 적다. 하지만 소는 많은 젖꼭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의 젖꼭지를 자른다. 젖 짜는 기계의 구멍 개수에 맞춰서 말이다. 우유는 그렇게 나왔고 치즈는 그런 우유로 만들어졌다. 덕분에 나는 착취의 맛을 느낀다. 이 맛은 풍부하고 감미롭다. 더없이 감미롭다. 이것 역시 경이로울 뿐이다.
이제 또 다른 경이로움을 맛보기 위해 의자에서 엉덩이를 뗀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