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면서
오래된 먼지를 털고 이삿짐을 정리하는데
빈자리 앞에서 문득 한 여행자가 떠올랐다
자기만 아는 곳으로 간 그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찾아와 잠깐 지냈을 뿐이었다
나에게는 할머니
그들에게는 딸 친구 친척 동료이자
아내 그리고 어머니로 기억된 사람
그에게 난 어떤 모습의 여행자로 떠올려질까
사랑을 하고 사랑하고 사랑을 시작해서
아프고 아파서 빈 가슴에 담은 행복한 시간을 쫓다가
빌라 작은 집을 얻어 오래된 먼지를 털고
곰팡이 하나 쿰쿰한 냄새 하나에 웃다가 또 웃다가
따뜻한 가슴에 오롯이 얼굴 묻고 슬며시 잠 청하는
내 여행의 끝은 어디일까
빈자리 앞에서 가끔 나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