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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 공책 Jul 15. 2018

할머니, 우리 할머니

지는 해가 아름답게 느껴지는가

  말 오랜만이다. 환한 형광등 불 아래서 원형 밥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했다. 술을 마셨다. 할머니로 인해 비극을 보여줄 얼굴들은 할머니로 인해 폭소만 내비쳤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그것은 할머니, 우리 할머니의 흥에 겨운 노래 때문만은 아니었다.


  할머니, 우리 할머니는 알츠하이머병을 갖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으면 안 좋은 기억은 오래가고 좋은 기억은 쉽게 잊는다는데 우리 할머니는 아닌가 보다. 할머니는 여전히 고스톱을 잘하지는 않지만 조금 치고 노래도 잘하고 말장난도 잘 친다. 밝다. 그냥 밝은 사람이다.


  지는 해의 아름다움은 할머니에 비할 것이 못됐다. 막내딸과 그녀의 아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사위 왔나”라며 손자를 어렵게 보는 할머니.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할머니.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 다며 노래의 후렴구를 반복하며 좋아하는 할머니. 그 아름다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행운이다. 말 그대로 행운이다. 우리 할머니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공직생활을 했던 할아버지에게 나오는 연금 덕분이다. 그것만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게 여유로운 생각에 잠길 수 있게 하는 요소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덕분에 자식들은 이따금 어머니와 보낸 낭만적인 추억에 잠긴다.


  너무 냉소적인가. 그런데 사실이다. 그리고 이게 현실이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른 것을 보는 독보적인 세계관의 천재나 미친놈이 아닌 이상 소속되고 싶어서 아둥바둥하는, 소속감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인간들에게 낭만과 여유는 다른 우주의 이야기다. 그들에게 있어서 돌봄은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쉽게 말하기 어려운, 어렵고 어려운 문제다.


  누구나 다 겪었고, 또 겪고 있는, 앞으로 겪을 인생의 보편적인 이야기가 하나의 급류에 떠내려간다. 부정하고 싶지만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앞에 할머니, 우리 할머니의 음성이 들린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지는 해의 아름다움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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