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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 공책 Jul 17. 2018

이 모든 것은 착각이었다

삼계탕과 작은 날갯짓

  계탕이 생각나는 초복, 한낮에 폭염으로 75만 3천여 마리의 닭이 폐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양계농가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거니와 시장이 만든 몹쓸 시스템 속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말 못 하는 생명들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려는 자본주의 보다 그걸 만들어서 이용하고 있는 인간이 더 잔인한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한번 폭염 피해와 양계농가를 다룬 기사를 자세히 읽는다. '농식품부', '피해를 본 농가', '가축재해보험', '가입 확인', '보험금 지급'이라는 몇몇 단어에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유추한다. 하지만 이내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다행인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답해줄 이 없는 질문의 거울 거너로 생명들의 허무한 죽음을, 농가의 수고로움과 허탈감. 성취감과 보람을 다 돈으로 교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것은 원망스러운 일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존 롤즈에게서 정의(justice)라는 배턴을 넘겨받은 마이클 샌델은 말했다. 시장 사회(market society)에서는 인간관계, 가족생활, 건강, 교육, 정치, 법, 시민적 의무 모두가 돈으로 거래 가능한 대상이 된다고 말이다. 반면에 그는 인간의 생산 활동을 조직하는 소중하고 효과적인 ‘도구’로서의 성격을 지닌 시장 경제(market economy)를 언급하며 그것을 지향했다. 삼계탕에서 시작된 작은 날갯짓은, 자신은 시장 사회 속에 살고 있지만 시장 경제를 추구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이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줬다.


  이 모든 것은 착각이었다. 마땅한 사람에게 마땅한 것을 주는 것이 정의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도, 무지의 장막이 공정한 사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존 롤즈의 믿음도,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자유주의적 관점만으로는 사회정의를 만들 수 없다며 공공의 선이라는 개념을 착안한 마이클 샌델도 다 부질없는 것이었다. 이미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는 없다고 무의식 중에 믿어버린 자본주의의 노예에게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다만 끊을 수 없는 미련으로, 그거 아니라고. 아니라고 주변의 누군가가 제발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



노예가 자신이 노예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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