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흔한 말이나 글 외에 표현의 수단을 가진 사람들이 항상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미술관을 꽤나 좋아합니다. 문외한이지만 잡식성이어서 다양한 미술관을 기웃거리다 보면 현대 미술을 종종 만났습니다. 어떤 작품들은 저에겐 도저히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 같아서 작품 앞에서 애꿎은 턱만 문지를 때도 있었습니다. 커닝이라도 해볼까 주위를 둘러보면 익숙한 듯 돌아다니는 많은 어린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런 어린이들은 아마 어떤 난해한 문제를 만나도 척척 풀어낼 수 있는 어른이 되겠지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역량도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왠지 좀 불공평한 기분이었습니다.
저에게 이끌려 간 유럽의 미술관에서 엄마는 무엇을 아름답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체화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억지로 느껴야 하는 것은 마치 현대 미술 앞의 턱을 문지르던 저와 같은 것이겠죠. 예술의 아름다움을 향유하고 고유한 취향을 발전시키기에 엄마는 너무 가난하고, 항상 바빴을 겁니다. 그래도 자연만은 언제나 곁에 있었고 그 아름다움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가 돌아갔습니다.
엄마는 미술관 밖에선 아름다움을 잘 발견했습니다. 길 가의 오묘한 색 이파리를, 벽 틈에서 핀 꽃을, 무언가를 닮은 나무를 누구보다 잘 찾아냈죠. 멋진 성당보다도 작은 공원의 나무에 더 감탄을 하는 사람, 오래된 다리의 역사보다 들꽃의 이름이 더 궁금한 사람, 유명한 풍경화보다 풍경 자체가 더 좋은 사람이었으니까요. 엄마들에 대한 두 가지 큰 의문 중 하나인, 꽃을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을 때 엄마에게 유명 미술관을 강요하는 것을 멈췄습니다. 엄마는 좋은 취향과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고 엄마의 방식대로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미스터리인 엉덩이를 덮는 상의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미궁입니다. 제 엉덩이가 부끄러워질 때쯤 어렴풋이 알게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