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저는 엄마의 흰머리를 뽑아 줄 때면 거짓말을 하곤 했습니다. 몇 개나 뽑았는지 엄마가 물으면, 헨젤과 그레텔처럼 한껏 앙상해진 숫자를 내밀곤 했습니다. 흰머리를 뽑고도 손이 미끄러져 검은 머리를 뽑았네, 햇빛 때문에 흰머리인 줄 알았네, 하며 잘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눈치 없는 흰머리가 힘든 엄마를 더 슬프게 할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흰머리 가닥마다 돈이 매겨져 있었다면 그런 기억은 없었겠지만요.
엄마는 저의 머리에도 하나둘 생겨나는 흰머리를 뽑아 주겠다고 자주 제안했습니다. 괜찮다고 내버려 둬도 된다고 해도 밝은 숙소에 가면 꼭 뽑아준다며 혼자만의 약속을 하곤 했죠. 한국의 집에서는 전기세를 아끼려 부러 불도 켜지 않기 일쑤면서 유럽의 집은 너무 어둡다며 투덜 대면서요. 짙은 안개 너머의 알프스를 상상해야 하는 흐린 날들이 지나고 샤모니를 떠나는 날은 참 맑았습니다. 마을 벤치에 앉아 시린 설산을 하염없이 바라봤지요. 흰머리 산을 보며 저의 흰머리가 또 떠올랐는지 엄마는 저의 머리를 헤집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거절할 명분도 없었죠. 그렇게 해도 산도 눈 부시던 날의 벤치에서 흰머리를 뽑았습니다.
- 옳지, 여기 있네. 흰머리를 뽑았습니다
- 히익, 여기도 있네. 흰머리를 또 뽑았습니다.
- 야야, 여기 노다지다. 흰머리를 몇 개나 뽑아냈습니다.
엄마는 딸이 늙어가는 것이 처연하지도 않은지 이것 보라며 뽑은 흰머리카락들을 해맑게 자랑했습니다. 어린 날 저의 애늙은이 같은 사려 깊음이 억울할 지경이었습니다. 어쩌면 엄마는 자식을 이만큼 나이 먹도록 키워낸 자신이 대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나는 나중에 온통 흰머리가 되면 검정 말고 멋있는 색으로 염색할 거야.
- 그래, 엄마가 해줄게. 항상 내 편만 하는 엄마가 대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