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어때

by 인디

여행의 밤엔 그날 찍은 사진들을 함께 보거나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며 가까운 혹은 먼 과거를 되새김질하곤 했습니다. 엄마의 이야기 속에는 언제나 많은 소녀들이 등장했습니다. 지금은 모두 작은 섬마을 떠났지만 일 년에 한 번 동창회날이면 세월의 마법이 풀려 다시 소녀의 모습으로 만나곤 했습니다. 어느 밤 엄마의 메신저 속 일상을 엿보며 그녀들과 딸들도 하나하나 소개받았습니다. 엄마 친구의 딸들은 다들 번듯하고 빈틈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다정한 딸, 세련된 직업인이면서 지혜로운 아내이자 며느리, 엄마까지 많은 역할을 거뜬히 소화해 내고 있었죠. 저는 저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대끼고 있는데 말입니다.


어쩐지 이방인이 된듯한 쓸쓸한 밤이 지나도 다음날 자연을 마주하면 마음에 이는 감정들이 잔잔해지곤 했습니다. 거대하고 경이로운 대자연이 아니라도 바람에 반짝이는 미루나무 한 그루, 햇빛을 머금은 토끼풀 한 포기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자연 안에서는 어떤 다름도 괜찮았습니다. 자연 속에서는 비단 잎이 나고 지는 시기뿐 아니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도 제각기 다릅니다. 짝을 이루는 것이 생의 목적이기도 하고 홀로 살아가기도 하죠. 그 모든 다름, 각자에 맞는 생존방식이 모두 ‘자연’스럽습니다.


유일하게 자연스럽지 않은 것들은 되려 통제되고 획일적인 것들이었습니다. 비닐 옷을 입고 똑같은 크기와 모양이 돼버린 애호박이, 인공적인 교배를 통해 크기나 외형이 통제되는 동물이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같은 사고를 하고 같은 목표를 갖도록 교육받거나 같은 생활 방식과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처럼요. 자연의 부분 중 가장 포악하고 모난 인류 역시 그 무궁한 포용력 안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 인류 안에서 아주 조오오금 또 다른 저는 문제도 아니겠지요.


이런 저도 그저 별 것 아니라는 건 큰 위로였습니다.

이전 11화말뚝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