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밤

by 인디

'확신하는 정의는 악이다.' 절대라는 것은 절대 없음을 알면서도 오만한 확신에 사로잡힐 때마다 저는 저 문장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어디서 본 말이더라, 가끔 이런저런 책을 들쳐보고 명언들을 훑어봐도 쉽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은 마음먹고 온라인을 수색해 출처를 찾아냈지요. [블리치]에서 나온 대사였습니다. 그동안 물고 빨아 온 세상 멋진 이 문장을 분명 근사한 책이나 영화에서 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만화책이라니, 어쩐지 김이 샜습니다. 그리고 이내 저의 편견 어린 허영심이 머쓱해졌습니다. 그것은 여러모로 저를 때리는 멋진 문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저는 쉽게 편견의 늪에 빠졌습니다. 짧은 순례길의 어떤 밤도 그랬습니다. 그 밤엔 몇몇 어린 순례자들이 잔뜩 술에 취했습니다. 하루 치의 길을 걷고도 고갈되지 않는 체력과 새로운 만남의 설렘 같은 것들 때문이었겠죠. 어두운 알베르게 안에서 점화되어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던 그들의 뜨거운 밤은 다른 이들의 밤마저 하얗게 불태웠습니다. 낯선 이들과 동침도 편치 않을 텐데 사각지대 없는 생방송에 잠을 설쳤을 엄마에게 괜히 미안했고 민망하기까지 했습니다.


- 엄마, 잠 못 잤지? 엄마한테 이런 것까지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닌데.

- 보긴... 들었지. 넌 보였니?

- 아니... 어두워서 하나도 안 보이더라고. 둘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뭐 어느 나라든 그런 사람들은 있다며,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저는 떠나기 전부터 엄마가 타지에서 낯선 것을 경계하고 다른 것에 쉬이 겁을 먹을 거라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넓고 유연했습니다. 엄마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확신, 엄마는 이럴 거라는 저의 편견을 깨 주었죠. 숙면의 재를 털고 나선 그날의 길은 더욱 고되었지만 지칠 때마다 지난밤의 이야기로 도파민을 충전했습니다.


울고 싶었던 불면의 밤은 여행 중 가장 웃긴 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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