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든 해는 똑같이 뜨고 지는데 왜 여행지에서는 일출, 일몰이 특별해지는 걸까요. 늘 시간에 쫓기며 살다가 시간을 기다리는 사치스러운 하루가 귀하기 때문이겠죠. 일몰 명소에 앉아 노을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시큰둥한 취급을 받는 해보다 이렇게 매일의 이별을 기대에 차서 기다려주는 이곳의 해가 더 행복하겠다 생각했습니다. 사실 제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저의 고향 서울에서도 기가 막힌 노을을 만날 수 있을 텐데요.
흔히 인생 석양을 꼽으라 하면 저는 루마니아로 가던 기차를 떠올립니다. 오래된 열차의 2등석 컴파트먼트에 앉아 작은 마을들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동유럽의 겨울은 대부분 흐리고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그날도 하늘엔 회색 구름 띠가 켜켜이 쌓여있었죠. 얼룩진 창 밖을 바라보니 빨간 해가 구름 띠 밑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튼 저녁 해는 다시 들판 너머로 지며 더욱 짙게 타올랐습니다. 여명과 황혼을 섞어 놓은 붉은빛은 구름과 땅 사이의 겨울 들판을 가득 메웠습니다. 저는 반가움과 황홀함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제 마음은 여행할 수 있는 자유와 건강에 대한 깊은 감사와 다른 시대에 다르게 태어나 이런 것들을 누리지 못한 부모에 대한 애잔함이 엉켜있었습니다.
포르투에서는 다른 관광객처럼 성곽으로, 공원으로, 강가로 매일의 석양을 배웅하러 갔습니다. 하지만 저녁만 되면 약 올리듯 피어오르는 옅거나 짙은 구름에 허탕을 치기 일쑤였지요. 오늘도 틀렸나 보다, 하고 돌아가던 마지막 저녁, 구름 밑으로 나타난 해가 다시 강으로 내려앉는 노을을 다시 만났습니다. 계절과 장소는 달랐지만 오래전 루마니아행 기차에서 봤던 그 빛과 너무 닮아있었습니다. 엄마에겐 이것이 인생 석양은 아니더라도 제가 간절히 나누고 싶었던 그날과 꼭 닮은 노을을 이렇게 함께 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뻤는지요.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으면 꼭 하나 정도는 이뤄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