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역(현 금천구청역) 앞에는 두더지 잡기 게임이 있었습니다. 시흥역에 갈 때면 엄마는 역까지 걸어가면 게임을 시켜준다는 약속을 하곤 했습니다. 어린 꼬맹이에게 2km 남짓은 꽤나 먼 거리였지만 두더지 머리를 두들길 생각에 기꺼이 길을 나섰지요. 엄마 손을 잡고 이리저리 구경하며 역에 다다르면 드디어 불쌍한 두더지를 흠씬 쥐어박아 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걷기와 친해졌고 엄마와 꼭 닮은 걷기 사랑은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순례길뿐 아니라 여행 내내 엄마와 저는 참 많이도 걸었습니다. 엄마와 저의 걷기에 다른 것이 있다면 속도였습니다. 엄마의 걸음은 목적지를 향한 이동이거나 운동이었기에 늘 쟀습니다. 여행을 와서도 어디로 가는 거야, 뭐 하러 가는 거야, 확인하고 나면 거침이 없었습니다. 분명 모든 바쁨은 한국에 두고 왔는데도 말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는 어슬렁을 익혀갔습니다. 목적이 있는 날이든 없는 날이든 작은 가방을 메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우리가 머무른 모든 도시를, 공원을, 숲을, 호수와 바닷가를 걷다가 마음에 드는 벤치나 풀밭에 앉아서 간식을 먹고 사람을 구경하는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때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특이한 무늬의 돌을 찾아보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때는 더 많았습니다. 그 수많은 걸음 위에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시흥역으로 가는 그 길에서 엄마는 어린 딸마저 걷게 해야 하는 넉넉지 않은 현실이 슬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길을, 시끌벅적했던 시장 골목과 짜릿했던 두더지 게임으로 즐겁게 떠올리곤 했습니다.
사실 엄마는 한 번도 게임기에 동전을 넣지 않았고 저는 그저 구멍만 혼내줬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