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온 삶을 한 조각씩 떼어 새로운 공간을 기워 나간다.
13천 원짜리 전기포트
5천 원짜리 텀블러
4천 원짜리 옷걸이
29천 원짜리 책상과 나눔 받은 의자
당근에서 나는 왜 이 물건이 그 삶에서 탈락되었는지 읽는 것을 좋아한다. 대부분 ‘왜’가 있어야 그 물건을 선택하는 편이다. 취향이 바뀌어서, 새 물건이 생겨서, 더 큰 게 필요해서 등등 대단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이별의 이유가 없이 그냥 밀려 나온 물건은 왠지 마음이 가지 않는다. 이전 사람을 실망시킨 이유가 나의 기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이 공간도 다른 사람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니 이곳에서의 삶도 새것은 없다. 그래도 나는 그 유연한 느낌이 좋다. 새것처럼 반질거리지는 않지만 이미 길들여진 물건들이 가진 성김이 되려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물건이란 자고로 써서 닳아야 제 맛인데 너무 애지중지하고 싶지 않다. 당근에서 이어받은 물건은 그것이 얼마든, 적어도 물건이 나보다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냥 이미 익숙한 듯 무심해진다. (내가 가진 물건 중 가장 비싼 컴퓨터는 가끔 나보다 귀한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서 열받는다.)
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물건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간결하게 산다 해도 이곳을 채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물건을 사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채워가는 것은 나의 필요 우선순위를 알게 되어 꽤나 흥미롭다. 나는 이불을 가장 먼저 샀다. 그리고 매일 따뜻한 차를 마시는 나의 그다음 선택은 주전자와 컵이었다. 그다음은 옷걸이 (빈티지 의류를 좋아한다), 가장 오랫동안 찾아 헤매고 고민한 것은 책상이었다. 좌식과 입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엔 입식으로 갔고 지금은 흡족하다.
이 작은 공간의 문지방은 내 마음에 드는 물건만 넘어올 수 있게 하겠다고 다짐했건만 싼 것, 선물 받은 것, 빌린 것, 엄마에게 빼앗은 것들이 문지방의 높은 자긍심을 가뿐히 넘었다. 내 취향인 것만 들이고 싶다는 소망과 어디서 헛소리냐, 싼 것이 내 취향이다!라는 꼬장한 목소리가 싸우다가 그 어디쯤에선가 타협을 한다. 많은 검색과 스크롤로 그 타협을 이끌어 내고 나면 매우 피곤해진다. 필요를 채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취향마저 채우는 것은 노오력이 들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집이 생기면 하고 미뤄뒀던 취향이, 월세라서 전세라서 못 했던 것들이 이제 취향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쓸쓸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취향과 현실을 버무려 이리저리 기워 맞춘 이 방이 그래도 제법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