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과로사하는 이유

by 인디

백수가 과로사한다니, 먼저 이런 표현을 만들어 낸 옛 분들의 재치에 다시 한번 감탄해 본다. 크으-. 죽을 만큼 바쁜 백수는 아마도 꽤나 즐거울 것이다. 그만큼 하고 싶은 일과 그것으로 채워야 할 시간이 많다는 뜻일터이니. 하지만 그 행동의 동기는 괴로운 마음에서 비롯했을 수 있다. 자신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 부단히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운동이며 취미며 창작이며 자기 계발로 왕성하게 하루를 보내는 백수와 주어진 일을 하고 퇴근 후 혹은 주말이면 소파에 한 몸이 되어 있는 직장인 중에 늘 칭찬받는 것은 직장인이다. 돈을 버는 직장인은 기본적으로 면죄부가 주어지며 추가로 하나라도 더 하면 갓생이 된다.


버트런트 러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것과 쓰는 것은 양면인데 버는 행위는 찬사 받고 쓰는 행위를 비난하는 것은, 열쇠는 좋고 열쇠구멍은 나쁘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자, 돈을 소비하는 것 마저도 구원받았다. 산책하는 것, 자연을 감상하는 것, 글을 쓰는 것.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대부분 무료다. 그렇다면 벌지도 쓰지도 않는 이렇게 소비되지 않는 글을, 그림을, 음악을,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선인가 악인가.


선악으로 구분할 수 없음에도 시간이 돈으로 치환되는 사회에서 돈이 되지 않는 시간을 보낼 때는 무의식적으로 죄책감이 든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나누듯, 돈이 되는지가 그 일의 가치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 지 오래다. 누군가 원한다는 것은 돈을 지불하는 것으로 증명되기에 돈이 되지 않는 글은 수요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 사람이라도 가닿으면 족하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겠지만 그 한 명이 제발 유료였으면 하는 게 간사한 사람 심리랄까.


아무도 원치 않는 무언가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축내고 있다는 부정적인 감정이 밀물과 썰물처럼 오간다.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지 않아도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자신의 목소리와 싸워야 한다. 이상적으로 믿는 것 혹은 믿는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한 믿음을 끝없이 시험받는다. 이는 자본주의가 습관이 된 사람이 돈이 되지 않는 무언가에 심혈을 기울이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나는 글쓰기는 누군가에게 가닿거나 위로하는 것 이전에 나를 위로하는 행위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나는 영원히 고통받는 병을 앓고 있으며 스스로를 치료 중이라는 것을, 글쓰기가 글쓴이에게 미치는 치유의 힘을 말이다. 대체 아픈 사람에게 누가 돌을 던지나! (아무도 안 던진 게 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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