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내 집을 살 수 없었다. 은행과 힘을 합치고 몇십 년을 저당 잡힌다면 아마도 가능하겠지만, 가늠해 볼 때마다 까마득한 시간에 숨이 막혀 뒷걸음질 치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서울에서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 분명 사람은 넘치게 많은데, 어쩐지 다양성은 가장 희박한 서울이 답답해질 때면 기차나 버스를 타고 서울을 나섰다. 빠르게 흘러가는 차창 밖 세상에는 집은 드문드문했고 들판도 산도 많았다. 어쩌면 한국은 좁지 않았다. 그저 서울이 좁을 뿐이었다. 언제부턴가 나의 여행 감상은 여기서 살고 싶은지에 대한 자문으로 맺음 되곤 했다. 살 지역을 정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면 나의 소박한 생존을 서울이 아닌 곳에서 이어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즉흥적인 인간에게도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첫 째, 살고 싶은 느낌이 들 것
둘째, 가까이에 즐길 수 있는 자연이 있을 것
셋째, 익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도시 규모가 있을 것
넷째, 좀 불편해도 뚜벅이 생활이 가능할 만큼 대중교통이 갖춰져 있을 것
내가 다녔던 꽤 많은 지방 도시들 중 속초, 묵호, 통영 정도가 이 기준에 따라 내 마음속 후보지가 되었다. 아름다운 산과 바다와 호수까지 모두 갖춘 속초는 종종 가봤던 터라 익숙한 도시였지만 관광객으로 좀 붐비는 느낌이었다. 묵호는 어쩐 일인지 첫인상에 마음에 들었으나 도시가 좀 작고 대중교통 선택지가 적었다. 되려 통영은 첫인상이나 두 번째 방문에서도 큰 감흥이 없었다. 오래전 첫 번째 방문했을 땐 날이 흐렸고,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마음이 흐렸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날과 마음이 모두 맑던 어느 날 세 번째로 통영을 왔을 때, 비로소 통영의 매력이 보였다. 어느 언덕 너머로 바다가 바라보이던 통영의 한 장면이, 가장 허접하면서 가장 까다로운 첫 번째 기준을 통과하게 했다. 서울과 너무 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멀어서 좋은 것도 같았다. 퇴사 이후 절대적 비율의 걱정과 한 꼬집의 기대로 나의 행보를 지켜보는 친구들을 만날 때면 통영에서 살아볼까 싶다, 하고 말하곤 했다. 사실 입으로만 주절거렸지 당장 통영의 방을 알아볼 정도로 빠릿빠릿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 지독한 이 더위가 가시면- 정도로 미뤄두고 있던 터였다.
아직 한여름을 관통하던 중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를 만나러 들렀던 통영의 작은 마을에서 새로 단장하고 주인을 찾고 있는 월세방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그래? 그게 내 방인가? 난 운명을 믿지 않을 만큼 때가 탔지만 인연을 믿을 만큼은 순진했다. 그로부터 3주 후, 아직 혼이 빠지게 덥던 8월의 어느 아침 나는 통영의 끝자락, 작은 마을의 옥탑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깊이 잠을 자지 못한 것은 낯섦 때문인지 커튼도 없는 창을 통해 들이닥친 아침 햇살 때문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통영에서 살아볼까, 생각만 하고 통영에서 살아보고 싶어, 입방정만 떨었는데 어쩐 일인지 이곳에 와 있었다. 내가 생각과 행동 사이의 간격이 꽤 좁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게 꿈인가도 싶었다. 임시라도 소박한 밥벌이가 있는 서울과 당장 떨어질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는 지방살이를 슬쩍 시작하게 되었다. 여전히 한국에 어디에도 ‘내 집’은 없었지만 그렇기에 이 가벼움을 만끽하기로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뜸 사랑 고백을 했던 이곳에서, 서서히 매력에 젖어들지 아니면 눈먼 서울촌놈의 로망이 피워낸 촌극으로 끝날지는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었다. 나를 사랑에 빠지게 했던 통영의 많은 언덕을 1년 후 어떤 마음으로 떠올리게 될지.